돌아가신 환자를 기억하며

문철원 굿모닝통증비만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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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원장님, 이 엄지발가락 좀 고쳐주이소” 처음에 그 분은 통풍환자로 오셨다. “통풍이어서 술을 그만 잡수셔야 합니다. 술 먹으면 더 붓는 병이니까 조심하세요.” 그러면서 발가락 관절에 주사를 놓아드렸다. 주사를 맞으시고는 또 거뜬하다며 낚시하러 가셨다. 그렇게 필자의 병원을 찾은 분이셨다.

그 환자분이 폐암으로 지난주에 세상을 떴다. 병원으로 들어오는 길에 장례를 마치고 온 아들을 만났다. 나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하면서 손을 잡았다. 부친께서 살아계실 때 진료를 잘해줘서 고맙다고. 나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입에서만 맴돌고 끝내 그 말을 하지는 못했다.

폐암의 고통으로 힘드셨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다른 말을 잇지는 못했다. 아들의 손을 놓고 진료실로 들어오면서 머릿속에서는 돌아가시기 전 그분의 건강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난 봄이었다. 허리도 조금 아프고, 왼쪽 허벅지가 이상하다며 찾아오셨다. 허벅지에 아프지는 않는데 혹이 하나 있다고. 그냥 혹인가 해서 만져보니 그냥 단순한 혹이 아니었다. 방사선 검사를 해보니 대퇴골에서 자란 혹이었다.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해 보라고 했는데 그 후론 한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가 여름이 한창일 때 다시 오셔서는 병원에 가니까 별것 아니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뭔가 불안했지만 더 물어보진 못했다. 며칠 후 부인이 어깨통증으로 병원을 들렀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3차 병원에 가서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다리에 혹도 그 폐암이 전이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답답해졌다. 가족들이 환자분께 폐암이라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았고 나도 환자분 이야기만 들으니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늦은 가을날에 바람 고요하고 하늘 맑은 날 그 환자분은 그렇게 돌아가셨다. 가을 하늘이 무척 맑아 보인다. 그 분이 가신 길이 저 하늘 넘어 보이는 듯하다. 폐암의 고통도 다 잊으시고, 한 잎의 떨어지는 오동잎처럼 그렇게 덩실덩실 춤추며 웃으면서 가셨으리라. 그분의 그 웃음소리가 쓸쓸한 진료실에 가득한 느낌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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