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으면 뭔가 신나는 일이

윤수천 동화작가
기자페이지

나는 다섯 시면 일어난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그 시간이 지나면 좀이 쑤셔서 이불 속에서 더 뭉그적거리지를 못한다. 내가 남의 집에서 잠자기를 꺼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남들은 한밤중인데 나 혼자만 일어나 부산을 떨기가 민망스러운 것이다.

학교 다닐 땐 그 버릇 때문에 나름대로의 고충도 있었다. 수학여행 땐 선생님과 친구들한테서 눈총을 받기 일쑤였고, 방학이 되어 고향을 찾아가면 친척 어른들한테서 핀잔을 들었다. 어떻게 된 애가 넌 잠도 없냐는 거였다. 나이를 먹을 만치 먹은 요즘엔 집사람한테서 종종 면박을 당하곤 한다. 우리 두 내외만 사니 다행이지 애들하고 같이 살면 며칠 못 가서 분가 얘기가 나올 게 틀림없단다. 옳은 얘기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설쳐대는 늙은이를 요즘 젊은이들이 누가 좋아할 것인가.

그런데 참 묘한 것은 이런 사정임에도 난 지금까지 이 고약한 버릇을 고쳐볼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날이 밝는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 없고 왠지 일찍 일어나야만 신나는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늦게 일어나면 공연스레 아침을 준비해 준 그 누군가에게 죄를 짓는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래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신이 난 일이 뭐가 있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있다! 아니 무지 많았다. 내 동화의 대부분은 아침 시간에 쓰여진 것이다. 아니 쓰여졌다기보다는 만났다고 해야 옳다. 이만하면 신이 난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내가 어깨를 으쓱 올려도 좋을 사건이 하나 있었다. ‘쥐라기 공원’, ‘이티’를 만든 영화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가 우리 나라 공항에서 기자들 앞에 털어놓은 성공담이다. 자기는 어릴 때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새로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만세를 불렀다. 봐라, 내가 왜 아침을 사랑하는지! 그날 난 그동안 주위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일시에 훨훨 날려보낼 수가 있었다.

최근 들어 아침에 책을 읽도록 하는 학교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소위 ‘아침독서 10분 운동’이다. 이 운동은 네 가지 원칙 아래 실시한다고 한다. 정규 수업 전에 각자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골라 독서를 하는 것이다. 시간은 딱 10분. 여기에는 학생과 선생님의 구분도 없다. 다함께 하는 것이다. 게다가 단지 읽기만 한다. 독후감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책읽기가 부담스럽지도 않다. 이 운동은 일본에서 시작했지만 이젠 우리 나라 학교에서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나는 또 한 번 기분이 좋았다. 봐라, 아침이 이렇게 좋은 것을! 내가 꼭두새벽부터 눈을 뜨고 날이 어서 밝기를 바라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아침은 무슨 일이든 시작하려는 사람에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아침에 품은 ‘생각’ 하나는 하루를 일굴 호미가 된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다. 하루는 결코 24시간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 한 달로 이어지고, 1년으로 힘을 실어준다는 것. 사람의 일생도 결국 그 하루가 모인 게 아닌가!

어릴 적 이불 속에서 고개를 살그머니 내밀고 언제 날이 밝나 하고 창문을 올려다보던 그 설렘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날이 밝으면 뭔가 신나는 일이 생길 것만 같던 그 가슴 설레던 새벽은 참 행복했다. 그 때 길들여진 습관이 오늘 아침에도 나를 일으켜 세웠다는 생각이다. 이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