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 개편논의가 본격화될 모양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추진의지를 밝혔고, 정부도 100대 국정과제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편안들은 시·군·구를 통합해 전국에 40개 혹은 70개 내·외의 광역단체를 설치하고 기존의 도(道)를 폐지하자는 데서 대체로 일치한다.
지금의 지방행정구역이 100년 이상 된 것으로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고, 비효율적이라는 정치권의 주장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지방자치 현장에 직접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행정구역 개편논의가 왜 그렇게 절박한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언짢은 마음이 앞선다.
첫째, 최근의 행정구역 개편론은 전통적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역할과 책임을 배분하는 기준으로써 생활자치의 기반인 기초단체를 통폐합하여 주민과 먼 광역자치단체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효율을 앞세워 자치의 본령을 포기하자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기초단체는 지금도 평균인구에 있어 프랑스의 120배나 될 정도로 결코 작지도 않다.
둘째, 행정구역 개편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개편의 효과로 많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는지’, ‘그들의 예측이 타당한 것인지’는 정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일례로 기초단체를 폐지하고 특별도체제로 개편된 제주도의 경우 개편 이후(’06년) 공무원이 이전(’05년)에 비해 약 360명 가량 증가했고, 사무처리도 과거 같으면 읍·면·동이 처리했을 민원마저 도지사에게 몰리는 비효율이 초래되고 있다.
셋째, 행정구역 개편을 위한 국민투표는 자칫 위헌시비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 행정구역 개편은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가 아니라, 지역별 주민투표 사항이다. 국민투표로 행정구역을 정하면 예컨대 경기도의 일을 부산시민이 결정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한편 주민투표에 부칠 경우 지역에 따라 道가 폐지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우리나라의 행정계층 구조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행정구역 개편논의는 이밖에도 지금과 같은 경제난국에 국민갈등을 조장할 우려가 있고, 대도시권간 경쟁으로 세계조류에 역행하며, 신중앙집권화의 우려가 있고, 천년 역사와 전통의 道제도를 하루아침에 뚜렷한 명분도 없이 폐지하는 경솔함이 염려된다.
행정구역 개편논의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하겠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