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군청이 지역 사회에서 갖는 의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매우 큰 자금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도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시군은 3천억 원에서 2조원, 도청은 10조원에 이르는 매우 큰 현금을 운영한다. 그러나 민간기업과 달리 그 현금의 주인은 시민이다. 정부가 공권력으로 징수한 세금이긴 하지만, 그것은 주민이 정부에 이용을 위임한 것이다.
문제는 대리인으로서 정부가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느냐이다. 복잡한 절차, 난해한 용어, 접근이 차단된 폐쇄성 등으로 인해 시민은 예산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지를 확인할 기회도 없었다. 예산은 정책이 실현되는 수단이고 우리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사업임에도 시민은 예산 과정에서 수동적인 지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민주화의 진행 속도에 따라 예산과정에 참여하려는 시민의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예산 집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낭비를 지적하는 사후적인 참여이었으나 이제는 사전적 참여로 바뀌고 있다. 공무원의 예측 능력 부족, 중복 투자, 활용되지 않은 시설, 현장과 괴리된 결정 등으로 인한 예산 낭비가 지적되면서 시민의 분노가 분출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책상에서 결정되는 과정, 몇몇 소수자의 솔깃한 말에 경도되어 결정되는 관료적 절차에 맡길 수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투자가 잘못되면 민간 기업은 망한다. 그래서 민간 기업은 생사를 걸고 예산을 결정한다. 반면 정부는 매년 세금이 들어오기 때문에 책임의식이 결여될 가능성이 크다. 공조직에 나타나기 쉬운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방지하기 위해 예산 과정의 시민 참여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앙정부는 다음 회계연도 90일전(10월 1일경)까지 제출하면 30일 전까지 국회가 결정한다. 그래서 이미 예산안이 국회에 되었다. 경기도는 다음 회계연도 50일전(11월 10일경)까지 의회에 제출하면 15일 전까지 의회가 결정한다.
각 시군은 40일 전(11월 20일경)까지 제출하면 10일 전까지 의회가 결정한다. 그래서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집행부가 예산 제출을 앞두고 마지막 사업 조율을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과거와 같은 일방적 홍보인 공청회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지역 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정부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검토 받는 기회도 갖고 민간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활용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이는 주민에게 사전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의미도 있다.
최근 안성시에서 개최한 예산정책 토론회에 참여하면서 참으로 소중한 이야기를 들었다. 시민은 이런 자리를 마련하여 준 것 자체에 대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했고, 공무원은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함께하여 주는 시민이 있어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러한 노력이 축적될 때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이 제고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하였다.
예산에 대한 주민의 관심 제고는 민주 시민사회에서 권리이자 의무이다.
이제 고조되고 있는 시민 사회의 참여 욕구에 대해 정부가 성실하게 대답을 해야 할 시기이다.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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