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불화

조순애 경기여성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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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하다가 다시 이곳에 돌아 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집 걱정이 제일 크다고.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수치로 내닫는 ‘나/우리의 집’을 마련할 엄두를 감히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대한민국 전국구 문제이다.)

16년 만에 돌아 온 내게 있어 집 문제나 직장 구하기 보다 더 힘들고 어려웠던 일은 모든 소음과의 전쟁이었다. 버스 안에 너무 크게 울리는 라디오 공해에서부터 식당에 가면 어김없이 틀어져 있는 TV, 주위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핸드폰의 난무...두 번째의 고통은 많은 사람들의 예의없음이었다.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고개를 돌리거나 딴 짓을 하는 척 하는 행동, 자동문을 밀고 들어갈 때도 뒤에 오는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만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문 열고 홱 사라지는 모습,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사라도 하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눈빛…. 외국에서의 문화적 쇼크에서 깨어나 살다 싶을 때 돌아 온 나는 또 다른 문화적 충격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이렇듯 귀향은 내게 또 다른 낯설음이었고 모국에서의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어눌함과 짜증,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삼년의 홍역을 치루며 이 사회에 호된 신고식을 했지만 내게는 아직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많은 걸림돌과 감히 물을 수 없는 물음들이 있다. 기술과 정보 분야에서는 세계 수위 자리를 다투며 나아가는 우리의 도덕적 지수는 과연 얼마일까? 도덕이라는 것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된다고 한다면 우리의 이웃에 대한 배려와 섬세함에는 어느 정도의 점수를 줄 수 있을까? 우리의 감성지수는 국민 총생산의 수치나 OECD 가입국이라는 자격으로, 올림픽/패럴리픽의 지표로 매겨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기도의 모토인 ‘세계속의 경기도’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인간적인 신뢰를 나누며 서로를 깊이 존중할 수 있을 때,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고 양보하며 자신을 내려놓을 때, 도민들의 감성지수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치로 존중받고, 그러기 위해 노력할 때 경기도는 이미 세계 안에 있는 것이다. 聖子, 聖德이 일상적인 습관의 총체라고 한다면 하루하루 우리의 삶의 무늬가 나눔과 배려로 짜여질 때 경기도는 ‘품격있는’ 세계의 경기도로 자리매김하리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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