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행복한 것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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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쓴 ‘아람이의 배’란 동화가 올 가을에 그림동화책으로 나올 예정으로 있다. 아람이란 아이가 자기 아버지가 만들어 준 나무배를 들고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떡장수, 과일장수, 장난감 장수 등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지만, 아람이는 그 어느 것하고도 자기 배를 바꾸지 않는다. 또 아이들이 같이 놀자고 꾀어도 고개를 흔든다. 신기한 일은 그때 일어난다. 들고 가던 배가 점점 커지는 것이다. 배가 커지자 아람이는 배에 끈을 매달아 끌며 간다. 마침내 바다에 다다른 아람이는 배를 타고 넘실대는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고는 산만큼 커진 배 위에서 아버지가 이야기해 준 넓은 세상을 바라본다.

내 딴에는 꿈의 소중함을 나타내 보려고 한 것인데, 얼마큼 내 생각을 어린이들에게 드러내주었는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한 영문학 교수는 나이가 들어 슬픈 일 중 하나는 남들이 꿈이 뭐냐고 물어주지 않는 거라고 했다. 생각할수록 그 올바른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꿈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것이지 나이 먹은 사람들의 것은 될 수 없다는 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왜 어른이라고 해서 꿈을 지니면 안 되는가.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얼마든지 꿈을 지닐 수가 있는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여기서 꿈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꿈은 사람이 일생 동안 살아가면서 가슴에 품는 단 한 번의 커다란 희망일 수도 있겠지만, 십년, 오년, 그보다 못한 한 해 동안의 작은 소망도 얼마든지 꿈일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일 년은 고사하고 한달, 단 하루만의 바람도 얼마든지 꿈인 것이다.

내가 아는 한 후배 여성은 고등학교 동창끼리 매달 돈을 모아 3, 4년에 한번 꼴로 해외여행을 하는 꿈을 지니고 산다. 해서 그동안 많은 나라들을 둘러보았고, 그 날의 여정을 사진첩 속에 차곡차곡 쟁여두고 있다. 그것도 멋진 꿈이다. 또 학창 시절부터 글을 좋아했던 K는 백일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문학 모임을 만들어 해마다 동인지를 낸다. 책이 나온 날은 남편들까지 불러내어 조촐한 맥주 파티까지 연다. 이 역시 아름다운 꿈이다. 그런가 하면 두 자녀를 결혼시키고 난 오십 대의 H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매주 토요일에 야외로 그림을 그리러 가는 꿈을 지니고 산다. 게다가 가을엔 그동안 작업한 그림 가운데서 몇 점씩을 골라 전시회까지 연다. 이것 또한 삶에 기쁨을 주는 어여쁜 꿈이다.

이런 것도 얼마든지 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꿈이라고 해서 굳이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에서 오랜 동안 의사 생활을 하다가 돌아와 시만 쓰고 있는 마종기 시인의 책에 이런 얘기가 있다.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인데, 사람의 참된 행복은 지위나 돈보다도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것들 안에 있다고 했다. 중병이 든 사람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해서 얻은 결론이라는 것이다. 장관을 한 사람, 경제계의 거물이었던 사람들이 설문서에 답한 지난날의 행복은 가족과 식탁에서 밥 먹으며 담소하던 시간이거나 아내의 생일에 외식을 하고 거리를 산책했던 일이라고 한다. 거창한 이야기를 잔뜩 기대했던 시인은 거기서 새로운 삶의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가을이다! 올 가을엔 어떤 꿈을 지닐까. 아니 어떤 꿈을 꿀까. 꿈이라는 말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설레는 것을.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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