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대학교수는 방학이 있어서 참 좋겠다고 주위에서 말한다. 필자 역시 몇 년전 대학에 올 때까지 같은 생각을 했었다. 아마도 방학기간 중에는 강의가 없으니까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마음대로 여유와 휴식을 가질 것이라는 추측 때문일 것이다. 물론 방학기간 중에 정규강의가 없기 때문에 교수의 입장에서 시간 운용이 자유로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교수사회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방학이 교수 개개인에게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학은 교수로 하여금 학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쌓게 하는 고된 연구의 기간임과 동시에 학내의 다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교수는 주로 교육, 연구, 봉사의 3가지 과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 중에서 교육과 학내 또는 대외 봉사는 학기 중에 주로 행해지는 반면, 연구는 방학기간이 아니면 사실상 그 성과를 낼 수 없다. 요즈음에는 각 대학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연구실적을 승진이나 승급의 요건으로 삼고 있고 이러한 연구실적의 공인을 담당하는 각종 학회에서는 연구 성과의 수준을 높게 요구하면서 연구결과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교수는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집중적으로 연구를 수행하지 않으면 우수한 성과를 내놓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방학이 대학교수에게 결코 자유로운 기간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아주대학교 법과대학에 있어서 이번 여름방학은 특별히 소중한 기간이다. 무엇보다도 내년 3월에 개원하게 될 법학전문대학원을 전국 최고의 수준으로 빈틈없이 운영하기 위한 제반 준비를 착실히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당면과제 중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 입학 이후에 배우게 될 교과과정 편성안과 실무교과목 강의방안, 실습과정 운영계획이나 학생지도계획 등을 내부적으로 마련해야 하고, 나아가 법학전문대학원 독립건물의 신축, 법학전문대학원 체제에 상응하는 도서관 제도 재편,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학생실습을 위해 필수적인 로펌, 공공기관, 기업체의 확보 등과 같은 문제를 학교본부나 외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이처럼 복잡다기한 업무들은 대체로 전례가 없거나 긴밀한 협동을 요하는 것들로서 법과대학 교수들이 전부 또는 팀별로 모여서 논의하고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학이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법학전문대학원에서는 단기간 집중적으로 종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법이론 및 실무교육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교수 개개인은 자신이 담당한 교과목에 대한 강의교재를 반드시 미리 저술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마도 대부분의 법과대학 교수들은 올 여름방학 내내 연구와 새로운 교재 집필을 위해 저녁 늦게까지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것이다.
대학교수들이 그 본연의 역할을 다하려고 하는 한 방학은 ‘일’을 위한 시간이지 ‘휴식’을 위한 시간이 되지 못하는 듯 하다. 무더운 여름방학을 연구실에서 책과 씨름하고 계신 교수님들께 진심어린 성원을 보내고 싶다.
백윤기 아주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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