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시계는 매우 빨리 움직인다

이영미 대중예술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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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교 1학년 때이니 정확하게 29년 전인가 보다. 농과대학을 다니는 동아리 선배가 황홀하게 피어있는 모란꽃 화단을 보며 농담처럼 지나가는 말을 했다. “000 교수 수업을 듣는데 말야, 그러더라고. 앞으로 이십년만 있어 보라고. 모두들 화단에다가 화초 심지 않고 배추, 무, 상추, 그런 것을 심을 거라고.” 하도 실없는 소리만을 골라가면서 하는 선배라 나를 비롯한 1학년 여학생들은 까르르 웃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이야기는 적중했다. 그 선배 앞에서 까르르 웃던 나는,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1980년대 중반부터 아파트 베란다에다 상추를 심어 먹기 시작했고, 도시의 웬만한 단독주택의 화단에는 다 상추와 깻잎, 열무, 얼갈이배추 등이 심어져 있다.

그 선배의 말에 우리는 왜 까르르 웃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오히려 우습다. 우리는 아마 배추와 무를 매우 우습게 보았던 모양이다. 그것은 농업이나 그를 통해 나오는 농산물의 중요성을 별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70년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농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수가 매우 많았다. 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의 농업인구는 절반을 넘었고,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농업국가였다.(이 말은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 실려 있던 말이다.) 우리는 농삿일이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할 정도로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고, 그래서 농사를 우습게 보았다. 잘 익은 사과 한 알의 가격이, 인공향료와 인공색소를 섞어 만든 사과맛 음료보다 싼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농삿일은 남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하여, 사과맛 음료보다 사과 한 알의 값이 훨씬 비싼 시대가 되었다. 유기농이나 무농약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었고, 그 생산품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격이 매겨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자신의 화단에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무농약 채소를 가꾸는 일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닌 세상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계는 하도 빨리 돌아서, 중년 이후에는 현기증을 느낄 정도이다. 명색이 대중예술 평론가라는 나도,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현란한 광고를 이해하지 못하여 “저게 뭐를 팔겠다는 광고야?” 물어봐야 하는 것이 종종 있을 정도다. 나이가 채 오십이 안 되었는데도 이 정도이니, 60~70대들은 이 엄청난 변화의 속도가 얼마나 버거울까 싶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대통령이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를 보면서 ‘우리 국민이 이렇게 민감하게 대응할 줄 몰랐다’라고 한 말을 진심이라고 믿는다. 아마 값싼 쇠고기의 수입에 웬만한 국민들은 만족할 것이며, 문제는 축산농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쇠고기 수입 이슈가 터질 무렵, 대통령의 행보는 주로 축산농가 쪽으로 맞추어져 있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아륀지’ 해프닝처럼, 시대가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몰라서 빚어진 엄청난 결과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시계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모르는 사람은 꽤 많은 모양이다. 여당의 모 의원은, 광우병보다 교통사고가 훨씬 더 사망률이 높은데 왜 그것에 대해서는 촛불집회를 하지 않느냐고 했단다. 1960년대만 해도 수해 같은 천재지변에 ‘인재(人災)’ 운운하며 정부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란 없었지만, 이제는 태풍 피해에도 정부의 대비 부족이 도마 위에 오른다. 즉 쇠고기 문제가 단지 사망률 같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라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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