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시골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 시골집들이 대부분 그렇듯 우리 집에도 앞마당, 뒷마당이 있어서 그곳에 꽃이며 나무, 채소들을 키우곤 했다. 집 주변도 온통 논밭과 들판인지라 사방팔방 툭 트인 곳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인 지금의 집에 들어설 때면 때로 갑갑함을 느끼곤 한다. 아파트 베란다에 조그만 나무도 키워보고 채소를 길러보기도 했지만 그 갑갑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화단을 가꾸며 살아야지’ 하고, 아직은 먼 미래의 계획들을 세워보는 것도 그 때문인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화단들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어, 시간이 날 때 가서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곳에 가면 조금 낡아 보이는 건물들 사이로 아름드리 과일나무들이며 갖가지 꽃나무들, 이런저런 풀들까지 철마다 번갈아가며 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어떤 것들은 처음 아파트를 지을 때 같이 심어진 듯 우람하고, 또 몇몇은 주민들이 직접 심고 가꾼 듯 아기자기하고 다채롭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언제 어느 철에 보아도 그 화단들은 꽉 들어찬 듯 풍성하다는 것이다. 누가 밑그림에 따라 채색하기라도 한 듯 모두가 조화롭게 자신의 자리를 빛내고 있는 것이다.
봄에 보면 봄의 풍경이 가장 화사하고, 여름에는 여름의 싱그러움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에 보면 익어가는 열매들이 탐스럽고, 겨울에 눈 덮인 풍경도 그럴싸하다.
철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리스사람 탈레스는, ‘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 말은, 모든 것들 안에는 이 세상의 본질이 각각 담겨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의 말에 따라 생각해 본다면, 꽃과 나무를 벗하며 사는 사람들은 가장 아름답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신을 만나며 이 세상의 본질을 맛보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곁에서 가끔이나마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나 같은 사람들도 그 행운을 나눠 갖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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