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설가와 정치가의 사담

박훈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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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우리나라의 최고위에 속하는 정치가와, 저명한 소설가가 만났다. 이 두 사람은 청년시절 공단지역에서 만나 각기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했던 친구이다. 이 둘의 만남은 사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대화 내용은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두 분의 대화 내용을 나름대로 빈약하나마 상상력을 동원하여 재구성해 보았다. 편의상 소설가는 ‘S’, 정치가는 ‘W’씨로 한다.

S:오랜만이네. W: 그래. 어디 외국에 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제 돌아 왔나?

S: 며칠 안 됐지. 자네가 요즘 너무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길래, 부랴부랴 비싼 비행기 값 들여가며 찾아온 거네.

W: 고맙네.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낙호아라. 자네가 내게 하려는 얘긴, 날더러 내 자리로 찾아가라고 하는 거겠지. S: 역시 머리 회전은 빠르구만. 그런데 애초에 자넨 길을 잘못 찾아들었어. 자네답지않은 방향이었어.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방향을 돌리세. 대의를 위해, 국민을 위해. W: 생각해 보겠네. 참! 자네 지난 해에도 노벨상 후보로 올랐다고 하는데, 전망이 어떤가?

S: 나 개인적으론 노벨상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네. 그러나 다른 문인들을 위해선, 보다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지. 정부에선 눈곱만치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무슨 기대를 하나? W: 그래. 노벨상 수상은 개인으로도 영광이지만, 국가로도 영광이지. 또한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될터이고.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되겠나? S: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창작, 번역, 출판에 대한 지원 등이 전폭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네. 지금 문인들의 만분의 일 정도만 저술 인세로 겨우 살 수 있는 형편이야. W: 그러나 저러나, 요즘 사태가 보통 심각하지 않아. S: 작은 촛불이 들불로 번진다는 걸 간과한 거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미국 작가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을 필독서로 해주어야 해. 우리가 만분의 일에, 이삼십 년 후에 닥쳐올 불행에 대해서도 염려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나는 아직 열다섯 살. 더 살고 싶어요” 하고 말하는 어느 중학생의 말이 가슴을 치더군.

S: 또, 어느 평론가가 일본과의 외교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더군. “포커 판에서 자기의 패를 보여주고 하는 정치 행위였다”라고. W: 여러가지로 고맙네. 벌써 저녁이 다 됐네. 우리 설렁탕이나 먹을까? S: 아아니. 이제 설렁탕은 겁나. 40여 년 전, 공단지역에서 일할 때, 월급 타면 든든하게 영양 보충하자며 먹던 순대국이나 먹지. W: 하하하.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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