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른의 스승

최운실 아주대 교수·평생교육총연합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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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득 꽤나 오래 전에 만났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외국의 한 명문고등학교를 무대로 입시위주 교육 속에서 꿈을 잃은 채 서서히 박제화 되어가는, 서서히 시들어 죽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개성과 꿈과 희망과 인간성이 실종되어 버린 ‘죽은 교육’의 장면들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현재의 삶을 즐겨라’ 라는 의미의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새로 부임하여 아이들의 삶의 선장이 되어 주려 했던 키팅 선생님의 ‘아이들 살리기 교육 감동 신화’가 인상적이었다.

입시교육의 늪에 빠져 허우적이는 아이들의 가련함이 어디 비단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 속 뿐이랴?

공부가, 성적이, 일류 대학 입학이, 모든 것의 면죄부가 되어 버린 우리의 교육 현실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시들어 가고 죽어가는 모습은 어떠하던가?

0교시 수업에서부터 늦은 밤까지의 보충학습에 찌들대로 찌들어 버린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난장이 통에 갇힌 거인’의 어이없는 허둥거림처럼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철저하게 재단된 교육의 틀 내에서 비대해진 그들의 외양을 옥조이며 초라한 영혼을 억지스럽게 담아내고 있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왜 하필 가정의 달 화려한 계절 5월에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아이들이 ‘참 인간’으로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들의 찢겨진 꿈과 희망과 야망과 젊음과 싱그러움이 다시 훨훨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Boys! Be Ambitious(청년들이여 꿈을 키워라)’고 했던가? 꿈이 없는 인간처럼 비참하고 슬픈 존재는 없다고 했던 가? 우리 기성세대들의 한스러운 세속적 욕망과 거품스러운 기대가 이들 순수한 영혼의 청소년들을 한낱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속의 자동화된 공정품처럼 물량화해 버린 것은 아닐런지?

이제 그들에게 잊혀진 ‘청소년의 계절’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들의 밝은 미소와 발랄한 생생함이 살아 숨쉴 수 있게 우리 어른들이 도와주어야 한다. 그들의 통통한 볼살이 붉으레 다시 피돌이를 시작할 수 있도록 생명을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미래 시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교육이란 이름’으로 실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 했던가?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이라 했던가? 연일 신문의 헤드라인을 수치스럽게 장식하고 있는 어른들의 수치스러운 군상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컴컴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탁해진 세상 속에서 아직은 순수한, 아직은 덜 망가진 그 아이들에게서 우리 어른들의 참 스승을 발견하고 싶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스승이 될 수 있는 세상이 아직은 남아있기를 기대한다.

‘세살 먹은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우리네 옛 속담을 떠올리며 그들의 남아있는 순수함과 열정과 사랑을 마음 속 깊이 담아내고 싶다. 아동문학가이자 이 시대의 큰 스승이신 이오덕 선생님의 ‘제자들이야 말로 내겐 가장 큰 스승이었다’라는 가르침이 오늘따라 가슴 깊이 저며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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