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봄 축제는 그간 TV에서나 보던 연예스타들을 직접 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다. 가수들의 무대 현장에서는 ‘실제로 보니 아주 예쁘다!’,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작다!’와 같은 학생들의 소감이 쏟아진다. 신기하기도 하고, 멀리 있는 것 같은 스타와의 거리가 왠지 가까워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대학가 축제기간에 연예인이 출연하는 것은 오래전부터다. 30년 전인 1978년의 산울림, 1987년의 들국화, 1990년의 이승철, 1996년의 안치환 등 당대 학생들에게 인기를 누리는 가수들은 대학축제에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음악가를 본다는 조금은 상식적인 상황이라 언론의 화제도 끌지 못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에는 윤도현밴드와 크라잉 넛이 축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학축제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97년 무렵이다. 당시 한 유명대학의 총학생회가 재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장 보고 싶은 연예인이 누구냐?’는 설문조사에서 뜻밖에 10대 아이돌 그룹인 에스이에스(SES)가 꼽힌 것이다. 에스이에스가 그 무렵 최고스타였기 때문에 얼핏 평범한 결과 같지만 문제는 그 대상이 대학이었다는데 집중되었다. 과거에 대학이 부르고 선호했던 대중가수와 질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전에 대학축제에 가수들이 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만 아무나 올 수 있는 자리 또한 아니었다. 대학생들의 유서 깊은 지향, 뭔가 주류문화와 분리선을 치는 저항적이거나 비제도적인 메시지의 인물이라야 가능했다. 대학문화는 분명 ‘대항문화’였다. 에이이에스 사건은 이제 대학이 대항문화가 아니라 ‘대중문화’로 변질되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던진 것이다. 거기엔 대학축제의 연예인무대가 학생들의 ‘주체적 참여마당’ 아닌 TV시청과 다름없는 ‘수동적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와 실망이 자리했다.
10년이 흐른 요즘에는 대학문화는 대중문화가 완승을 거둔 양상이다. 올해 대학가 봄 축제의 핫 아이템은 단연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와 같은 여성 아이돌 그룹이다. 이들을 우리 학교로 데려올 수 있느냐의 여부, 그 출연리스트가 학생들 간에 자기 학교의 위세를 재는 척도가 됐다. ‘왜 우리 학교에는 원더걸스가 오지 않느냐’는 학생들의 항의에 대학측이나 총학생회는 골치를 앓는다. 이 덕에 전통적 축제 단골인 민중가수와 포크가수 그리고 근래 진보를 대변하는 인디그룹들은 거의 사라졌다.
근래 대학생 다수를 지배하는 것은 과잉으로 치닫는 스타선호 풍조라고 할 수 있다. 의식이고 메시지고 뭐고 ‘내가 보고 싶고, 되고 싶은 유명스타’라야 마음이 끌린다. 거대담론 퇴각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학생들이 연예인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 부담이 등록금 인상으로 직결된다는 피부현실에도 눈감는 것은 안타깝다. 3, 4월을 수놓았던 각 대학 등록금 인상 투쟁이 무색하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가수들이 화려한 율동으로 대학축제 무대를 덮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씁쓸하다. 현실과 이미지 모든 측면에서 지나치다. 스타라는 이름 앞에 굴복해 연예기획사의 과도한 요구에 질질 끌려 다니지 말고, 인기인들 중에서도 적합한 인물을 선별해 학생들이 주도하는 재미있는 프로그램과 연결시키는 노력은 불가능한 걸까. 대학마저, 해도 너무한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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