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4월28일이다. 어제는 과거로 사라졌고 그날의 기억만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달력을 보면 4월28일은 이순신 장군 탄신일이다. 그런데 400년이 훌쩍 지난 까마득한 과거가 아니라 1986년 그날 서울 신림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날 당시 서울대 학생이었던 김세진과 이재호가 분신했다. 이 두 청년은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벌어진 최초의 대중적인 반미 구호였던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제 몸을 불살랐다. 그들은 광주학살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미국에게 있으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미국 철수를 통해만 이룩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죽음으로 알리고자 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현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얼마 전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시 대통령은 미군감축 백지화를 선물처럼 주었고, 우리 대통령은 그 선물을 너무나 고마워했다. 오늘날 ‘반전반핵 양키고홈’ 구호를 아는 대학생이 얼마나 될까?
며칠 전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에게서 다음의 얘기를 듣고 격세지감을 실감했다. 비정규직 문제로 힘겨운 농성을 벌이고 있던 KTX 승무원들에게 어느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박종철 인권상위원회로부터 박종철 인권상 수상자로 KTX 여승무원 조합원이 선정됐다는 통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을 초조해 하고 있던 조합원들에게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서로를 얼싸안고 감격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데 박종철이 누구지?” 거기 있던 누구도 박종철이 어떤 사람인질 몰랐다는 것이다.
아마 그들을 해고한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박종철이 누군지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이철 사장은 누군가? 1970년대 유신독재에 대항해 민청학련을 조직한 주모자로 사형 언도를 받은 민주투사였다. 그런 그가 이른바 좌파정권인 참여정부의 공사 사장이 돼 노동자를 해고하는 당사자가 된 시대의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지난 일을 망각시킨다. 오늘의 정의를 내일의 넌센스로 만드는 게 역사일 수 있다. 그런 역사에 대항해 기억투쟁을 벌이는 영화를 몇주일 전에 봤다. 김응수 감독이 1986년 어제 분신한 두 열사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만든 ‘과거는 낯선 나라다’라는 독립영화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라는 제목을 단 이유에 대해 김 감독은 “‘과거는 박물관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 투영되는 것이다’라는 역설적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어제의 경험이다. 과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오늘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민주화된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누리고 사는 우리는 그런 일상이 만들어진 역사를 망각한다. 그 결과 우리 시대 ‘이념의 정치’는 갔고 ‘욕망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정치가가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의 집값을 올리는 정책을 펴겠다는 정상배를 국회의원으로 뽑는 국민수준으로는 대한민국 선진화는 결코 이룩될 수 없다.
집단적 기억상실증이 우리를 점점 ‘욕망의 정치’에 빠지게 한다. 과거의 흔적들은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만 집단기억으로서 역사는 소멸하지 않고 존재해 오늘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 김세진·이재호 열사가 분신했던 1980년대는 지금 우리에겐 낯선 나라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무의미해진 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에너지가 됐다는 사실을 역사로 기억할 때, 그들의 희생은 오늘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한 부분이 된다.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그들은 죽은 후에도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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