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공공도서관에서 다른 지역의 공공도서관에 비해 큰 활자의 책들이 많이 발견된다면, 이는 공공도서관 운영자들이 주민들의 필요에 잘 반응한다는 뜻이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지역에서 일과 시간 이후에도 등·초본과 인감증명서 등 필요한 서류를 뗄 수 있다면 이 역시 주민들의 필요에 잘 반응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앞의 사례는 미국 뉴저지 주의 공공도서관의 사례이며, 뒤의 사례는 안산시의 사례다.
공공서비스 공급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주민들의 필요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반 재화나 서비스의 경우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사람들의 필요를 남보다 먼저 잘 발견하거나 혹은 이미 발견된 필요에 대해 더 좋은 조건으로 공급해줄수록 득이 되므로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필요는 충족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공공서비스 공급에 있어서는 아무리 주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머슴의 자세로 임하라고 강조하더라도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서비스 공급자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이 주민들의 만족과는 별개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공공서비스의 문제를 완화하고 개혁을 성공적으로 해내려면 단순히 머슴처럼 일하라고 강조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실제로 공공서비스의 공급도 마치 시장에서처럼 남에게 더 잘 서비스 할수록 자신이 더 성공할 수 있게 유인체계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안산시의 24시 주민센터의 경우에도 24시간 근무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공무원 노조의 반대가 있었지만 안산시가 희망자를 모집해 승진에 반영하고 하루 6시간의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여 자발적으로 일과시간 이후 공공서비스 공급이 이뤄지도록 했다.
사실 이런 ‘자발성’은 어린이집, 노인요양소 등에서 제공되는 서비스, 의료서비스처럼 쉽게 계량화할 수 없는 서비스일수록 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서비스를 공급하는 ‘꽃동네’에 살고 있는 분들의 표정이 공공부문에 있는 노인요양소에 계시는 분들보다 더 밝다고 한다. 그 까닭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분들이 자신에게 제공되는 서비스가 의례적으로 하는 것인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인지를 생생하게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고객들이 더 잘 만족하도록 ‘자발적으로’ 노력하도록 하는 유인구조가 바로 시장경제가 성공하게 된 핵심이다.
한 때 주춤했던 공기업 민영화가 시장경제를 내건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민영화를 하고자 하는 이유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안산시의 24시간 행정서비스와 접수 6시간 반 만에 심의를 마친 파주시의 이화여대 캠퍼스 초고속 승인사례를 거론하면서 이제 맞벌이 부부가 많은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24시간 행정서비스가 시작되고 파주시의 빠른 결제행정도 여러 곳에서 벤치마킹 될 것으로 기대된다.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은 ‘산업과 교역’이라는 책에서 동종 업종이 몰려있는 산업지구(Industrial District)의 특징으로 “어떤 한 기업이 (소비자들이 좋아할) 어떤 제품을 개발한다는 소문만으로도 다른 기업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이 소문에다 보태 새로운 어떤 것(something new)을 계속 개발해내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끊임없이 개발되는 휴대전화를 보면 이것이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시·군들이 산업지구의 기업들처럼 움직인다면 대통령의 이런 언급이 없더라도 안산시 사례는 소문만으로도 다른 시·군에서 안산시의 아이디어에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보탠 새로운 방안을 시도 했을 법하지 않은가?
행정개혁, 더 나아가 정부개혁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성공적으로 시장을 모방해 낼 것인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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