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 먼저 이런 저런 남녀의 향수가 코에 인사한다. 일찍 채비해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렸을 사람들의 냄새.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는 강한 체취. 이어 또랑또랑한 눈빛의 초등학생들이 들어오고, 늘 같은 시간에 같은 모습으로 보게 되는 단구의 중년 아저씨도 메고 다니는 가방을 뽐내기라도 하듯 앞으로 돌려 잡으며 들어와 애들과 인사를 나눈다. 이 둘의 눈빛은 똑같다. 아저씨 가방 안에는 분명 두툼한 책이 들어 있을테고, 도서관에서 그 책을 읽으며 하루를 아낌없이 보내고 오리라 마음먹은 듯 가방은 튼튼하고 또 딱딱해 보인다.
아파트단지 안. 이제 막 피어오르는 잎들과 활짝 핀 진달래, 매화 꽃들이 아침 기운을 만끽하며 나를 지나친다. 간혹 새들이 지저귈라치면 오늘 할 일에 대한 갖가지 구상들이 화들짝 놀라 새 울음소리에 섞여 사라진다.
단지를 돌아서면 쥐똥나무가 심어진 길. 나무를 따라 걷다보면 전봇대 아래, 그리고 담벼락 바로 밑 한뼘도 안 되는 변변치 못한 땅에 뿌리박은 민들레가 나를 올려다본다. 흙 한줌을 나눠 살아도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하다며, 민들레들은 옹기종기 겸손하게 몸을 낮춘다.
법원 사거리 앞 신호등. 대기하고 있던 차들이 신호에 맞춰 출발하면서 일제히 고통을 내뿜는다. 마치 처음이라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다른 이에게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간 몇몇 사무실 여직원들은 길가에서 하나씩 둘씩 자신들의 사무실로 서둘러 사라진다. 벌써 도착한 이들은 문을 열어놓고 먼지를 날리며 분주하게 청소를 하고 있다. 그 각각의 공간들엔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자신의 인생을 토해 놓을까.
이제 막바지 길. 법원 뒷산이 눈에 들어온다. 뒷산 한 옆은 광교 신도시공사 중. 두발검사로 밀린 중학교 때 머리처럼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없는 것도 많아 늘 조급했던 중학시절처럼, 마음이 살짝 복잡해오는 시간.
아, 나는 오늘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게 될까. 조금 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강한 체취. 중년 아저씨의 가방. 그리고 잎, 꽃과 새들. 오는 길에 지나친 민들레. 나보다 앞서간 여직원들. 그들처럼 강렬하고 성실하게, 또 낮은 자세로 오늘 하루를 살아 낼 수 있을까.
이제 오전 8시50분. 나는 3별관 현관문을 들어선다.
송석봉 수원지법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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