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의 국도 전방에 신탄리 표지판이 보인다. 심호흡을 하며 좌우를 살폈다. 포성(砲聲)도 없이 조용하다. 이때다 싶어 가속기를 힘껏 밟고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를 달렸을까? 차 뒤로 포성이 들린다.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전쟁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다. 지금 연천 국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연천 국도를 달리다 보면 다락대 사격장이 나온다.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에 있는 사격장으로 동양 최대 규모의 포 사격장이다. 국도를 사이에 두고 동쪽이 포 사격장이고 국도를 가로 질러 서쪽이 포탄이 떨어지는 탄착지다. 한마디로 내가 달리고 있는 자동차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다. 거의 매일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왠만한 강심장 아니고선 이 길을 지나기가 쉽지 않다. 경기도 북부, 이 중 연천군의 단면이다.
경기북부는 44%가 군사보호구역이며 연천은 98%에 이른다. 군사보호구역이란 이유로 하다못해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고친다. 경기북부는 50여년을 국가 안보를 위해 양보와 희생을 강요(?) 당해온 애국의 땅이다. 그동안 경기도는 일률적 규제를 하고 있는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탄원도 해보고 시위도 했다.
다행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시적 변화가 보이고 있다. 대통령 인수위와 국방부는 군사분계선 인근 지역 규제를 종전 ‘벨트’방식 제한에서 ‘박스’개념으로 변경하기로 하고 관련 시행령을 상반기 중 개정키로 했다. 늦었지만 제한구역을 개별 군사시설에서 500m 이내로 축소하는 방안과 건축신고시 군부대협의 의무화를 없앤다고 하니 환영할 일이다.
이제 안보의 희생지, 그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경기북부에 더 큰 관심과 지원을 해줄 때다. 최근 경기북부는 규제 해제와 미군공여지 반환 등으로 개발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대학을 유치하려고 양해각서(MOU)도 맺었다.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레저타운을 만든다는 청사진도 그렸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개발을 막고 있는 수도권규제법과 국가균형발전법 등 규제도 풀어야 한다. 차별 없는 정부 지원도 절실하다. 용산 미군기지 부지는 정부가 국가예산으로 공원을 만들어주면서, 경기북부의 미군공여지는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용도로 개발하려고 해도 정부가 돈을 내고 사라고 하니, 이런 차별이 또 어디 있나? 이젠 정부가 규제해제와 지원 등을 통해 국가 안보를 위해 헌신한 희생과 애국의 땅 경기북부에 보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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