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동 동대문은 안녕하신가

박 훈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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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의 본 건물은 집채만한 크기의 돌로 된 축대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인데 축대의 높이는 6m 남짓 돼 보이고 그 축대에서 시작돼 역시 커다란 돌이 쌓여 이뤄진 성벽이 건물을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그 성벽을 서씨는 마치 곡예단의 원숭이가 장대를 타고 올라가듯 익숙하고 민첩한 솜씨로 올라갔다. (중략)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더욱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됐다. 서씨가 성벽 위에 몸을 나타내고 그리고 성벽을 이루고 있는 커다란 금고만한 돌덩이를 그의 한손에 하나씩 집어 번쩍 자기의 머리 위로 치켜올린 것이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사람의 힘으로 그 돌덩이를 들어올린다고 하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니라, 그 보물 1호의 일부가 한밤중에 조용히 움직여지고 있었다니! 물론 이것은 허구이다. 1960년대 한국문학을 아름답게 서술했던 김승옥의 소설 ‘역사’의 한장면일 뿐이다. 남대문의 끔찍한 일이 있고 필자는 얼마 후 이 소설의 한장면이 떠올랐다. 혹시 동대문은 안녕하신가?

남대문 참화가 벌어진 지도 벌써 석달이 돼간다. 비록 상상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상기한 60년대 동대문의 일과 엊그제 남대문의 참사를 견준다면,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이제는 이 모습도 단지 소설 속 상상이 아니다. 소설 속에선 위의 돌을 한두개 빼 바꿔 놓은 일이었지만, 그 누가 알랴, 그보다 더 황당한 일이 이뤄지고 있었는지. 문학은 그 시대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60년대의 이 일은 차라리 순진했다고 볼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난생 처음 서울에 올라가 (우리는 서울에 가는 것을 단지 ‘간다’ 하지 않고 ‘올라간다’ 라고 표현한다.) 남대문 옆을 지나며 선친이 “저게 남대문이다”라고 알려줬을 때, 그때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뭐라고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모습. 서울 거리의 번화함의 한 끄트머리를 쥐고, 조용히 서울을, 아니 준엄하게 조선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는듯 했던 숭례문. 남대문은 한국 백성에게 일종의 ‘판도라 상자’였다. 그 상징들이 죄다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그 밑받침 축대가 남아있듯, 우리에게 희망은 살아 있다. 자유와 방임은 보다 강력한 책임과 관심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어떤 역사에 대해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 한다”라고 한다. 이제 새로운 남대문이 지어지게 되면, 그 옆에 불탄 남대문의 모습을 커다랗고 선명한 사진으로 전시해야 한다.

“동 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 남 남대문을 열어라….” 그 동요를 다시 나지막이 불러본다.

박 훈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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