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姑婦) 갈등에 대하여

성보기 수원지법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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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몇년 전 가사재판을 담당했었는데, 의외로 많은 가정에서 부부관계가 고부갈등으로 파탄나는 것을 보았다. 좀 더 살펴보니 장남과 결혼한 주부라면 대부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고부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이 특이한 현상의 원인을 밝히고 고부갈등으로 부부관계까지 갈라지는 아픔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고부갈등을 겪는 가정이라도 시어머니나 처(며느리), 그리고 남편에게 성격적인 결함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남편은 꽤 잘 키운 아들이고 효자 소리를 듣는 편에 속한다. 아내도 처음에는 시어머니를 잘 모셔보려고 노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이혼법정에선 부부 본인들은 물론 양가 사이가 이미 원수같이 돼 있어 안타까운 경우들이 많다. 역설적으로 시부모 잘 모셔보겠다고 시집살이까지 한 경우 고부갈등이 더 심한 것 같다.

필자로선 고부갈등을 일으키는데 책임이 있는 쪽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은 경우 원칙적으로 남편에게 책임을 물었다. 우리나라는 혼인과 동시에 아내가 홀홀단신으로 남편 집안의 구성원으로 편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고부관계를 원만히 이끌어 갈 1차적인 책임도 남편이 대표하는 시가쪽에 있다고 보았다.

어떤 점에서 보면 우리의 가족구조는 고부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첫째로, 며느리들은 시부모로부터 어떠한 은혜도 입어본 바가 없기 때문에 크게 감사해하는 마음이 없는데도 시부모 모시는 일은 남편보다 더 많이 부담하고 있다. 남편은 우리 어머니가 나를 위해 한평생을 희생하셨으니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하지만, 아내는 자신이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특히 명절과 같이 시댁식구들이 모두 모였을 때 음식마련, 설거지 등으로 심신이 피곤한 며느리는 친정이라고 놀러온 시누이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둘째로, 고부사이는 철저한 지배복종이 요구되는 권력관계로 자리 잡혀 있다. 며느리로선 받은 것 없이 어렵기만 한 시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이 그다지 생기지 않는다.

남편들은 아내들의 이러한 마음을 알아야 한다. 효도를 하고 싶으면 솔선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수익자부담의 원칙에도 맞는 것이다. 그나마 자신과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시댁 조상들을 위해 제사상이라도 차려주고 자신과 성도 다른 아이를 낳아 잘 길러주게 하려면 아내를 극진히 사랑할 것이며 시부모에게 제공한 이상의 용돈을 장인·장모에게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시어머니들로서도 고부사이는 원래 그런 것이란 것을 인정하고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아들이 며느리와 알콩달콩 잘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으시다면 과거 자신이 며느리로서 치러야 했던 일방적인 희생을 며느리에게 요구해서는 안된다.

이 글을 보면 집사람이 물을 것 같다. “필자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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