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은 농업진흥 생산기반시설로 만석거(일왕저수지), 만년제, 축만제 등 인공호수를 조성하는 한편, 세제혜택과 과거를 통한 인재등용의 기회를 주는 등 다각적인 민생대책을 강구하고 수원을 현재의 직할시격인 유수부로 승격시켰다. 이때 주목해야할 점은 전국 8도에서 각각 1가구씩 선발된 8부자를 종로 한복판에 위치한 현 북수동성당터에 이주시킨 것이다.
전국 8도에서 청약을 받아 이주해온 8부자집은 일반 서민들과 전국에서 수원에 모여드는 상인들과 이주민들에게 저리로 사업자금을 대출해주거나 소상인들에게 사업비용을 무상으로 대여해주어 상공업자들간에 상거래가 왕성해지게 됐고 8부자집을 중심으로 수원 경제가 급속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북수동성당터를 중심으로 두루 혜택을 누린 동네라고 해서 당시에는 동네지명을 보시동(普施洞:두루 누구에게나 혜택을 베풀어 모두가 잘 사는 동네)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수원 화성 안에 있던 모든 동사무소들을 통합해 화령전 옆의 행궁동사무소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행정상의 업무는 함께 보더라도 역사적인 의미에서 볼 때 수원성지(북수동성당) 일대를 보시동이란 옛 명칭으로 복원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렇게 현 북수동성당터(수원성지)는 정조대왕 시절에는 돈많은 8부자들이 살던 동네였다. 그런데 이곳은 지난 2000년 여덟가지 천상행복이 주어지는 천주교 순교성지로 선포됐다. 순교성지로 선포된 이유는 1800년 정조대왕 사후 불어닥친 혹독한 천주교 박해 중 다산 정약용 선생이 설계한 둘레 5.743㎞의 수원 화성 정 중앙에 위치한 북수동성당을 중심으로 한 수원 화성의 성안과 성곽 전체에서 무려 2천여명이 넘게 하느님을 증거한 순교자들이 피를 흘려 처형됐기 때문이다.
옛날 돈 많은 8부자가 살던 보시동 북수동성당터(순교성지)가 진복팔단(眞福八段:예수그리스도가 선포한 8가지 참 행복)이 선포되는 성지의 중심이 됐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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