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타 무너졌다. 600년간 온갖 전란에도 잘 버티다가 어처구니없게 평화의 시기에 수많은 소방차와 소방인원이 동원되었고 진화를 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나 관련 기관에서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전소되고 말았다.
이런 불행한 사건이 사후적으로나마 더 나은 문화재 방재시스템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숭례문 소실의 교훈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본다.
첫 번째는 관리 주체다. 숭례문이 사유재산은 아니지만 이를 나의 재산처럼 관리하려는 유인을 확보해야 한다. 구 사회주의 소련의 집단농장의 사례는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미국 농부들이 소련의 과수원을 방문해 성한 사과와 상한 사과를 같은 상자에 포장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이는 소련의 경우 과일의 주체가 농부들이 아니기 때문에 과일에 대한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은채 무조건 할당량만 채우기 때문으로 결국 과일을 높은 가치가 있게 만들려는 주체인 과일의 주인이 존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숭례문과 같은 문화재를 사유재산과 최대한 비슷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시민들이 문화재 활용방안에 대한 결정 권한을 가지고 더불어 이를 관리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 아울러 단순히 문화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특정 문화재를 사랑하고 이것이 잘 알려지고 관리되는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가칭 ‘숭례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같은 모임이 형성되고 이 사람들이 다양한 문제 제기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이 실제 관리비용을 대는 문화재의 주인인 시민들이 주인 노릇을 하는 거의 유일한 길로 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규정집의 형성과 진화에 관한 문제다. 문화재를 개인의 소유로 하기 어렵다면 그 관리에 대한 규정집이 잘 형성돼야 한다. 일반 사용자들이 편집하는 무료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어(Wikipedia)는 그 내용의 신뢰성과 전문성의 부족으로 브리태니커와 같은 백과사전과 경쟁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교육·참조 사이트 중 방문객이 가장 많은 백과사전으로 성장했다. 그 성공의 배후에는 보통법의 형성과 비슷한 규정의 진화가 있었다. 논문의 내용이 중립적이며 원천이 분명하고 아직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최신의 정보는 싣지 않는다는 등의 기본정책이 있었고 기본정책의 구체적 의미를 결정하는 판례에 해당하는 가이드라인이 형성되어 논문의 내용에 대한 분쟁이 아니라 논문의 정확성과 내용의 제고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숭례문 소실의 경우 문화재에 화재가 나면 관계당국과 협조하라는 규정이 있었지만 그 협조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없었고 그 ‘협조 과정’이 오히려 혼선을 불러 숭례문을 전소에 이르게 하였다. 이 부분을 어떻게 고쳐갈지 나름의 ‘판례’가 형성되어야 한다.
대형광고탑의 붕괴사고로 피해를 보상해야 했던 대구시는 대형광고탑에 대해 보험을 들었고 이에 따라 보험사는 보험금 지불사태를 막으려고 이를 아주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의 숭례문 사건은 민간업체에 맡겼으나 방화에 따른 피해를 막으려는 유인을 만들지 못했다. 방화의 경우 경비업체에서 책임을 지지 않으므로 민간에 위탁했지만 재건비용과 정신적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넘겨졌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숭례문 재건에 약 3년, 200억원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 이번 숭례문 전소사건을 계기로 민간위탁을 할 때 국민들이 정신적 피해를 보상받지는 못하더라도 재건 비용을 물게까지는 하지 않게 하려는 논의가 숭례문 재건 성금 모금 이야기에 앞서 활발해졌으면 한다. 그렇게 해서 민간위탁에서의 규정도 다듬어져야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숭사모”와 같은 단체의 관심과 노력은 그 규정이 제대로 형성되는데 기여할 것이다.
김이석 경기개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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