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족과 국가를 동일한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은 단일 민족이고 한국은 단일 민족이 세운 국가라는 믿음 때문에 무의식 중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민족이라는 말은 백개의 성(百姓)이 합쳐졌다는 말이다. 따라서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애당초 성립되지 않는다. 선사시대부터 이 땅에 수많은 인구가 살았다.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를 남겨놓은 인구는 수만 명으로 추정되고 그 이후 청동기 시대가 되면 수만 개의 고인돌을 남겨놓은 인구는 추정하기조차 어렵다.
그들은 누구인가? 이런 인구들이 갑자기 한반도에서 떠났다고 볼 이유는 하나도 없다. 따라서 그 사람들의 다양한 유전인자가 우리에게 전달되어 있을 것이다.
특히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벼농사를 지어 온 농사꾼들이다. 고인돌의 고향은 따뜻한 동남아시아이다. 중국에서는 유행하지 않았던 문화다. 옛날부터 한반도 주민들은 동남아 주민들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현대 한국인의 언어가 유목민 언어계통인 알타이어가 된 것은 신라시대 이후 부터이다. 그전에 벼농사 기술자들이 사용하던 언어인 한어(韓語) 중에 쌀, 벼, 풀, 씨등 기초 어휘들은 모두 고대 인도어계통이라는 연구 보고가 있을 정도로 남아시아적인 문화가 이 땅에 먼저 자리 잡고 있다. 한국문화의 기초는 그래서 처음부터 2차원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북아시아적인 문화를 수용하는데는 관대하면서도 남아시아와의 인적·물적 교류에 대한 현상에는 본능적인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매일같이 농경문화의 소산인 쌀을 먹고 살면서도 언어의식은 유목민적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의식은 혼란스러운지 모른다. 문화의 계통을 확실하게 분류해 보지 않은데서 연유한 것이다.
지난 2000년 인구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의 성씨는 286개이고 귀화인의 성씨는 442개나 된다. 이 귀화인들의 유전인자가 세월이 지나면 토착인구의 유전인자를 압도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다. 현실적으로 보아도 현재 한국의 농촌 총각의 3분의 1이 동남아 출신 신부와 결혼하고 있다. 그 여인들이 낳은 아이들은 재론의 여지가 없이 모두 한국인이다.
그 아이들을 혼혈인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이미 우리 몸속에 선사시대부터 남아시아인들의 유전인자가 흠뻑 배어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육아와 교육도 한국정부가 책임져야한다. 농촌 마을에서는 외국인 며느리들을 보듬어 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하고 초등학교 학생들부터 이방인과 함께 사는 연습을 해야한다는 내용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그것이 현실이며 그것만이 한국의 미래를 조화롭게 하는 길이다.
서양의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가 발전한 원동력의 핵심은 포용성이었고 현대에 와서 중국과 미국이 다민족 국가로서 번영하고 있는 모습은 국가 발전의 좋은 교과서가 된다. 순혈주의는 한국 역사상 몽골의 침입과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민족단결의 한 방편이었다. 이제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국다운 새로운 사회철학이 필요한 시점을 통과하고 있다. 국가 발전의 속도만큼이나 빠른 의식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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