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광기가 없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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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거장을 인터뷰하면서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물어보면 어김없이 “광기로 치달려온 인생인 것 같다”는 답이 돌아온다. 최고의 록 밴드 ‘사랑과 평화’에서 기타를 친 최이철은 “시끄럽다고 동네 사람들의 항의를 받으면서도 미쳐라하고 기타를 치던 어렸을 때나 나이든 지금이나 마음은 같다”고 했다. 가수 조관우도 음악 때문에 학창시절 친구들한테 들은 얘기라곤 미쳤다는 말밖에 없었다고 한다.

남들과 똑같이 공부하고 정해진 시간대로 움직이는 식으로는 기타를 연주하고 곡을 써내려갈 수 없다. 남들의 눈치에 아랑곳없이 몇 시간이고 매진하는 광기가 있어야 예술은 창조된다. 그림 한 장이 팔리지 않아도 피땀을 흘리며 계속 캔버스를 채우고, 심지어 완벽한 자신의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귀를 자르는 빈센트 반 고흐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위대한 천재는 다소의 광기를 지니고 있다”는 세네카의 말에 다들 동의할 것이다. 시인 볼테르 또한 “미쳐버리지 않고서는 어떤 예술에 있어서도 성공할 수가 없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비단 천재들뿐인가. 천재 소리를 듣지 못하는 평범한 예술인도 일반인 기준에서 볼 때는 비상식적인 행위와 사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상당수 예술계 종사자들은 직장인을 비롯한 일반 사회인과 대화를 나눌 때 말수가 적고 스스럼없이 어울리질 못한다. 공연장 무대 뒤에서는 말없이 조용히 있다가 무대에만 올라가면 미친 듯 열정을 발산하는 뮤지션들이 태반이다.

지금 우리 음악계가 필요한 것은 광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광기는 정신이상이 아니라 단지 정상의 궤도에서 일탈하는 비정상을 의미한다. 지극히 정상인 사람이 예술을 할 이유가 없으며 너무도 뻔한 것, 정상적인 것을 보려고 사람들이 공연장이나 갤러리로 향하지 않는다. 예술은 하는 사람이나 감상하는 사람이나 전하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한결같은 기본은 비정상, 바로 광기인 것이다.

대중문화의 접근방식이 과거와 차이를 보이면서 이제 대중예술분야에는 자본과 기획에 의한 기업적이고 산업적인 산물들로 가득하다. 음악계만 해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예술가가 움직이는 곳이 아니라 시장을 읽는 눈이 빠른 비즈니스 마인드가 지배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잃어버리는 것은 예술가, 그리고 그들의 바탕인 광기다.

예술가의 광기가 부재하면 음악은 긴장과 상상의 확장을 상실한다.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소비품으로 전락한다. 결국은 소비되어 사라져버려도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제히 발라드를 부르고, 우후죽순 아이돌 그룹이 출현하는 국내 음악계에 만연한 ‘너도나도 우르르’ 질병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시장동향 파악, 기획, 홍보와 마케팅은 대중예술에 있어서 불가결한 요소들이지만 이것들 모두는 광기를 생명으로 하는 예술 밑에 위치해야 한다. 미친 듯 곡을 쓰고 연주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에 머물러야지 그러한 산업적 요소들이 위에서 군림하면 예술의 광기는 죽고 참다운 작품은 볼 수가 없게 된다. 지금 우리의 음악계가 이렇다. 2008년은 대중예술의 광기가 부활하는 해가 됐으면 한다. 우리는 가수의 재롱을 원하는 게 아니라 광기가 빚어내는 감동을 기다린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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