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 아니라 그 뒤가 문제다

이영미 대중예술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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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인가 “부자 되세요!”라는 카드회사 광고가 대유행을 하면서, 모든 새해 인사를 싹쓸이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도 역시 가장 무난한 인사는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기를”, 혹은 “만사형통(萬事亨通)하시길” 등의 축원들이 최고일 듯하다. 말 그대로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다 잘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게 바로 성공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성공의 그 뒤편이 허전한 감이 있다. 이른바 ‘성공’이라고 일컫는 지위나 재산 등을 얻고 나서, 현격하게 삶의 긴장이 떨어지고 그 이후의 성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람들을 유난히 많이 보게 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계만 봐도 그렇다. 학문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은 말할 것도 없이 좋은 학문적 성과를 내는 것이겠지만,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남다른 명예욕 때문이 아니라, 연구자로 살아가는 방식으로 교수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에서이다. 연구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이리저리 시간강사로 뛰면서도 100만원 벌기도 힘든 시간강사에서 벗어나, 좀 더 안정된 조건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구자들 중 태반은, 평생 소원이던 교수가 되고 나면 정작 연구성과의 양과 질 모두가 형편없이 떨어진다. 월급도 넉넉하고 연구실도 있는데, 연구의 열의와 아이디어 등이 사라지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비슷하다. 승진 전까지는 부지런하고 열의가 있던 사람이, 일단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오르고 나면 현격하게 나태해지거나 부하 직원들만 달달 볶아 성과를 쥐어짜는 현상 또한 비일비재하다.

누구나 성공을 하고 나면 나태해지게 마련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일정한 지위에 올랐다는 것은 이제 드디어 자신이 아래 직위에선 해보고 싶어도 해볼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태껏 그것을 해보고 싶어 일을 해왔던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부터 드디어 제대로 일다운 일을 할 수 있게 됐는데, 왜 푹 퍼져 버리는 걸까?

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이 좋아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지위에 오르기 위해 일을 하는 버릇이 고질화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즉 연구를 하기 위해 교수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교수라는 지위를 위해 연구를 하는 식이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지위에 오르느냐이고, 일은 그저 그것을 위해 괴롭지만 견뎌야 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바로 대학입시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20세가 되도록 공부가 재미있고 좋아서 해본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일도 공부도 모두 어떤 지위나 자격을 얻기 위한 방편이고 고통스럽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당연히 그 지위나 자격 등이 생긴 후에는 공부도 일도 그만 둔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평생 지속된다. 취직을 위해 공부하고 승진을 위해 일한다. 그래서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것을 얼추 이룬 나이가 되면, 맥이 풀려버려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몸은 생생하나, 정신이나 태도 등은 벌써 조로증세가 보인다.

이는 개인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매우 나쁜 일이다. 개인은 성공과 더불어 삶의 목표와 보람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이제 막 일을 할 수 있을 원숙한 나이에서 성과가 멈춰버리니 그런 큰 손실이 없다.

그러니 어찌 보면 우리가 새해에 축원해야 할 것은, 성공이 아닐 수 있다. 성공 그 이후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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