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달력 한 장의 의미

문애숙 고향을생각하는 주부들의 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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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하더니 어느새 열두 장 달력의 마지막 장만이 쓸쓸히 매달려 있다. 언제 보아도 빼곡하게 적혀있는 흘려진 글자들을 보면 바쁘긴 바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즈음 핸드폰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음이 울렸다. “12월22일 태안 기름 제거봉사 갑니다. 참석을 못 하시는 분은 연락 주세요.” 의왕농협 봉사단에서 온 연락이었다. 하필이면 팥죽 먹는 동지날이었다. 망설이고 있자니 다시금 전화벨이 울린다. “꼭 갈거지? 명단에 올려놓는다. 부처님도 이해하실거야.”

“알았어요.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12월22일 새벽 6시20분 농협직원들과 주부대학 봉사단과 함께 태안으로 향했다. 털모자에 우의와 장화까지 준비해 도착하니 오전 9시가 넘어 버렸다. 이원면 대리 해안가로 135명이 투입됐다. 우리들은 준비해간 면 수건과 흡착지 등을 휴대하고 바위 사이랑 모래 사이에 쌓여 있는 기름 찌꺼기를 걸레질 하듯 닦고 닦았다. 한참을 일하고 있는데 한 중년 신사가 다가와 말을 섞는다. 어디선가 뵌 듯한 얼굴이다. 인천시장 보좌관이라며 어머님이 사시고 계시는 고향이란다.“이곳은 청정 해안으로 낙지와 조개, 꽃게 등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저 해안가를 돌아가면 아직 손도 못 댄 곳이 있는데 젊은이들이 오면 투입시켜야 해요”라고 말했다.

얼마나 이야기를 나눴을까. 해는 중천에 떠 있는데 언제 밀려왔는지 바닷물이 우리들을 따라오고 있었다. 봉사도 하다 말고 일어나야 했다. 나온 김에 오후까지 할 생각들을 하고 왔는데 좀 아쉬웠다. 그래도 마지막 달력의 끝장을 작은 봉사로 점을 찍을 수 있었고 인연을 맺은 이원면에 일조를 보러오겠노라 웃음으로 약속했다.

12월19일은 새 대통령을 뽑았다. 그동안의 어려움을 호소라도 하는 듯 국민들은 압도적인 지지로 한 후보를 선택했다. 공공장소를 가나 친구들을 만나도 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상상 이상이었다. 아무쪼록 “국민을 잘 섬기겠다”고 본인이 방명록에 적었듯 그간 공약해온대로 어려운 백성들을 잘 헤아리고 따뜻한 모성애로 다가서 5년 후 마지막 달력 한 장이 남았을 때 웃음으로 끝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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