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지고 실용정부가 떠오르고 있다. 실용은 참여에게 권위주의 청산이란 혜택을 받았다는 덕담으로 바통 터치하며 5년의 레이스에 진입하려 한다. 이 코스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생길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철 지난 왕조시대를 넌지시 끌어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조선왕조사 연구학자들 사이에서 참여정부를 광해군 정권에 대입해 해석해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또한 우연찮게도 참여의 대통령과 실용의 대통령 당선자는 스스로 태종-세종 계보를 그려 호사가들에게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참여정부가 광해군 정권과 닮은 점은 무엇인가? 이른바 민주화세력과 북인의 형성 과정 등을 볼 때 동일한 소수파 정권이라는 것과 이에 따른 개혁적 성격이 우선 고려됐을 것이다. 이 두 정권은 또한 똑 같이 해양세력으로부터 비롯된 가공할 국난인 구제금융체제와 임진왜란 등을 겪은 위에서 성립됐다.
뿐만 아니라 이 둘은 동북아균형자론과 청나라와의 실리외교에서 보듯 북방의 대륙세력과도 동일한 친연성을 보여 줬다.
그리하여 북인 소수파 광해군 정권이 서인 다수파 인조반정으로 이어졌듯 참여정부는 실용정부에 바통을 넘겨주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다수파가 정계에 복귀해 외형적 세력을 과시했지만, 그들은 또 한번의 국난인 호란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후 더욱 심한 정파의 분열을 초래해 당쟁을 심화시키고 백성들을 도탄으로 몰아넣으면서, 급기야 해양세력에게 나라를 넘기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러니 7·4·7로 표방되는 신보수주의 성장정책이 가져올 양극화의 심화가 대북정책의 경직화, 중국의 패권주의 등과 맞물려 새로운 호란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는 그야말로 가상에 그침이 마땅할 터이다.
참여정부의 지도자는 구 시대를 정리하고 새 시대를 열고 싶다며 스스로를 태종에 비유했지만 잘못하면 구시대의 막내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한다.
한편 실용정부 당선자는 세종의 ‘생생지락(生生之樂)’의 뜻을 이어받아 모두가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는 편안한 세상, 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한다. 이런 사실들을 버무려 다 잘 사는 나라의 터를 닦기 위해 ‘권위를 청산한’구 시대의 막내를 끌어 안고 진정한 새 시대로 나아가는 것이 왕조 역사의 계보에 빗대는 뜻이리라.
그렇지만 “시골마을에서 근심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영구히 끊어지도록 해 살아가는 즐거움을 이루도록 할 것”이라는 세종대왕의 말과 달리, ‘세종실록’은 해마다 빠짐없이 유망하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음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발 빠르게 방영될 TV 드라마 ‘대왕 세종’이 용비어천가의 속삭임에 그치고 말기를 비겁한 호사가들은 느긋하게 즐기면서 바라고 있을 테니까.
덧붙여 논평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에게도 한 마디 해 두자. 이들은 올해를 ‘자기기인(自欺欺人)’이라 명명하며 참여도 실용도 도덕적 해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듯 양비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도덕적 결벽은 ‘관음증’에 불과하지 않을까. 진정으로 비판하고자 한다면 공황과 전쟁의 체제를 가장 낮은 곳에서 정직하게 바라보고 진정한 상생의 숲을 향해 자신을 풀어헤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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