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얼마나 더 극악해질까?

이영미 대중예술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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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아이들이 TV 드라마를 보고 나쁜 짓을 배울까 걱정이라지만, 사실 드라마는 현실을 보고 인물과 사건 등을 만든다.

어떤 작가가 자신이 만드는 인물을 독하고 나쁜 인물로 만들고 싶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드라마를 착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가끔 1950년대나 1960년대 야담이나 라디오 드라마 자료들을 뒤적거리고 있노라면, 참 그 시대 인간들은 순진하기 이를 데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개 ‘이서구 극본’으로 되어 있는 그 시절 사극들은 기껏해야 기생의 사랑을 얻지 못해 연적인 사내를 모함, 하옥시키고 귀양 보내는 정도의 악한에 그치고 있다. 뇌물도 받고 매관매직도 하지만 아직 그 시대 사극 인물은 복잡하고 논리적인 음모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일 능력은 없어 보인다.

그에 비해 이 겨울 ‘사극의 전성시대’의 악한들은 임금의 폐위와 암살을 기도하는 수준에 이른다. 전제군주시대 왕을 암살하는 건 절대로 공공연한 일일 수 없을 테니, 그것은 고도로 복잡하고 체계적인 음모와 거짓으로만 움직여질 수 있다.

이제는 아시아를 주름 잡는 문화상품이 된 ‘대장금’은 벼슬자리와 특정 상인의 이득을 위해 고위직부터 하급직까지 체계적으로 움직이며 비밀리에 일을 처리하는 엄청난 수준의 음모를 보여준 바 있다.

1990년대 중반 ‘모래시계’가 카지노와 조폭, 정치 등과의 유착관계를 형상화해 충격을 준 지 불과 5~6년 후 정경유착과 권력형 비리는 드라마의 단골 소재들로 떠올랐다. 최근 몇년 동안 방영된 추리적 방식의 작품들은 (‘변호사들’과 ‘부활’, 심지어 코믹 터치의 ‘내 인생의 스페셜’까지) 태반이 이러했다.

그런데 올해의 드라마 ‘이산’에 이르면 악의 무리들은 더 더욱 교묘해진다. 어전회의에서 결정되는 국가의 경제정책은 상권을 독과점한 시전상인들의 힘에 의해 좌우되고 정조를 폐위시켜 죽이려는 정순왕후는 세손이 비단 사도세자(자기네들이 죽인)의 아들이어서만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정책으로 자신들의 목줄을 죄는 자이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한다. 즉 원수의 아들이니 죽여야 한다는 수준에 그치는, 순진한 시대가 아닌 것이다. 정책이 달라 정적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가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독점이 깨질 위기에 처한 시전상인들은 위장폐업으로 정부에게 으름장을 놓고 시전에서 뇌물을 상납받는 중신들은 백성들에게 돈 몇푼씩을 쥐어주며 항의시위를 조직하며 경찰의 폭력 진압을 유도해 일부러 사건을 키운다. 위장 폐업이나 돈으로 동원된 시위, 폭력 진압과 여론 조작 등 그동안 우리 드라마들이 사회로부터 ‘나쁜 짓’을 참 많이도 배운 셈이다.

삼성 비자금 사건의 폭로를 들으면서 드라마를 연구하는 직업을 가진 필자는 내후년쯤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논리적인 재미있는 드라마가 생산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폭로가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 사회가 상상 혹은 실행하는 정·경·언 유착 수준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들은 기업의 정부 정책 조정, 정부 내 감찰기관과 판·검사와 언론기관의 통제, 차명계좌와 불법 계좌추적과 핸드폰 추적, 책을 가장한 돈다발 택배, 미행과 킬러의 고용 등과 같은 내용들을 논리적이고 교묘하게 짜나가지 못하면 아마 시시하다고 채널을 돌려버릴지 모른다. 논리적이고 정교해진 드라마. 필자는 이러한 발전을 기뻐해야 할 것인가, 슬퍼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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