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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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근대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승부라고 말한다. 전자의 근대화를 우파가 성취했다면, 후자의 민주화는 좌파의 투쟁으로 쟁취됐다. 근대화주의자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의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근대화 이후 경제성장에 달려 있다. 이에 대해 민주화세력은 우파들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은 1997년 IMF 사태로부터 발생한 것이며, 이로부터 심화된 사회적 양극화를 치유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에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화두가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금까지 여론을 보면 민주화세력이 절대적인 열세다. 성장주의자인 이명박과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거의 60%에 육박한다. 거의 날마다 이명박 후보와 관련된 의혹들이 제기되지만, 지지율의 큰 변동은 없다. 왜 이런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필자는 두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는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준표 의원의 진단대로, 이명박 후보가 도덕적으로 완전 무결한 후보가 아니라는 것을 유권자들은 잘 알고 있지만, 그만이 어려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명박 후보에 대한 변하지 않는 민심은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반영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실하게 노력만 해서는 성공신화를 만들 수 없고 편법과 비리를 저질러야 한다는 집단심성이 만연돼 있다.

이에 대해 대통합민주신당 지도부는 ‘이상한 나라의 노망 든 국민’이라는 실망감을 표출했다. 필자는 우리 국민들이 정말 노망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신문과 방송에 보도된 것들을 보면 정치·경제·문화의 어느 곳 하나 병들지 않은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신정아 교수의 학력위조사건을 계기로 미의 세계인 문화계가 얼마나 추하고 속물적인 곳인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런 문화계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여론의 폭발적인 관심은 사회적 관음증을 증폭시켰다. 필자는 그들에 대한 믿거나 말거나 한 유언비어를 열심히 말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을 읽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이 삼성이다. 속속 드러나는 삼성의 영향력을 알면 알수록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혹자는 이렇게도 생각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것보다 더 많은 성공을 삼성이 성취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되는 것보다 ‘삼성공화국’이 되는 편이 낫다고.

지금 우리의 딜레마는 성공의 결과를 인정하고 향유하면서도 그 결과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범했던 잘못을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륜을 욕하면서 부러워하고, 삼성이 저지른 비리를 처단하기 보다는 삼성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을 더 걱정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에 대한 고해성사를 이제는 해야 한다. IMF 위기가 닥친 어려운 시절, 새해인사로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돈이면 다인가? 위로는 대통령 후보와 재벌총수, 아래로는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천민자본주의의 노예로 살았던 삶을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진정 무엇을 위해 단 한번의 삶을 살 것인지를 성찰하지 않고 눈 앞의 성공만을 위해 돌진했던 지난날 우리 삶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내년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회갑이 되는 해다. 육십갑자로 회갑이면 새로운 출발점에 이르는 시간이다. 이제 다시 초심으로 되돌아가 대한민국을 건강한 나라로 다시 세우는 일에 모두가 매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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