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청명 임창순 태동고전연구소 선생님을 기억하며 -
선생님, 추석은 잘 쇠셨습니까? 저희들을 항상 물가에 세워놓은 아이처럼 걱정하다가 한 마리의 학처럼 훨훨 날아가시더니 지금은 혹시 묘향산 보현사 골짜기 측백나무 위에 살포시 깃들고 계십니까?
근데 이게 웬 일입니까? 생전에 그렇게 조심스러워하시던 4대 모 일간지에 그것도 구설수에 덜컥 오르셨습니다. 청명 선생님께서 자식 관련 폭행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화그룹 사옥 앞에 풍수를 고려해 세운 ‘붕비용약(鵬飛龍躍)’이란 전각 글자를 구성해주시고, 더더욱 놀라운 것은 군사정권의 마지막 꼬리를 잡고 있던 노태우 대통령의 청와대 관사 선정 때 풍수를 봐 주셨다는 소식입니다.
제가 민중사니 바보사니 하며 철없이 껍적대다가 지레 겁먹고 도바리치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인사차 들른 물골안 청명대를 나설 때 만원짜리 지폐 여러장 고이고이 접어 계면쩍게 손에 쥐어주셨지요. “제겐 글자만 가르쳐주십시오. 사상을 주입하려 하지 마십시오”라며 건방지게 대들던 저를 잔잔한 웃음으로 품어주시고, 근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주역’읽기를 권하지 않던 선생님이셨습니다. 이런데 이게 어찌 된 영문입니까?
벽장에 고이 감춰두었던 양주병을 선뜻 내놓고 술판 거나하게 벌이다가 흥이 오르지 않으면, “이 녀석들아, 어디 그래 가지고 동냥 한 푼이라도 얻겠냐!”며, 각설이타령을 멋들어지게 풀면서도 술 한 잔 안 하던 분이셨는데도, ‘권불이십년’을 증명하던 10·26의 그날 청류헌에서 저희들의 권유에 소주 한 잔 기꺼이 들이키던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영문입니까?
하긴 선생님께서 살포시 날아가신 뒤 한 세기가 가고 오고, ‘유물론’의 해체 이후 우리들 믿음의 끝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던 ‘변증법’도 그 수명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테제-안티테제-신테제는 우리에게 어떤 가시적인 전망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더러는 종로 5가 방하수련원으로 몰려가 ‘기 수련’에 몰입하였고, 또 더러는 불연·기연(그렇다 아니다)의 증산으로 달려갔습니다.
기독교로, 천주교로, 불교로 돌고 돌아 ‘천불교’로, 드디어 ‘두루만신교’로 풀어헤치고 유학에서 이 지점에 놓인 ‘주역’에 이르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4서와 3경을 잇는 가교, 이성(지)과 감성(덕)의 중간 통로, 인간·사회와 자연과의 연결 고리, 세속계에서 탈속계로의 통로. 이 지점이 공자가 가죽끈이 세 번씩이나 끊어지도록 읽게 했던 주역의 비밀이었고, 그 설명할 수 없는 경계가 선생님께서 함구하셨던 곳입니까?
그리하여 드디어 정-반-합을 넘어 합-불-비로, 기연-불연을 넘어 기연-불연/ 비연-자연으로, 그렇다-아니다/ 아닌 게 아니다-절로로의 길을 배꼽 속에 감추어두셨습니까? 선뜻 권하기에 마뜩찮은 비합법의 가시밭길. 그러나 그 길을 통과하지 않고는 ‘저절로’ 그리고 ‘저로부터’를 아우르며 자연과 객·주관적으로 하나 되는 ‘절로’의 그 경지에 이룰 수 없음을 이번 구설수로 들통 내신 것이리라 미루어 짐작해보겠습니다.
윤 한 택 기전문화재연구원 전통문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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