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 준수와 결과 승복

민 기 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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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절차 내지, 과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어도 결과만 좋으면 상관이 없다는 뜻인데, 일상 생활에서 심심찮게 사용되는 표현이다. 결과가 좋으니 그동안에 있었던 실수나 잘못쯤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넓고 관대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베풀 수 있는 아량으로 생각될 여지가 있다. 이때문에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의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사소한 절차 위반을 문제 삼고 들추는 인사에 대해서는 별로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곤 한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의 이같은 정서를 확인한다면 그들은 한국 사람들을 상당히 관대한 민족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미국 사람들은 어떠한 일의 절차나 과정 등을 매우 중시한다. 어떻게 보면 극히 비합리적이거나 비경제적인 절차로 여겨지는 것들도 이에 대한 규정이 있으면 엄격히 준수되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보면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절차를 제대로 준수한다면 만족할만한 결론에 도달할 확률이 높아질 것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단지 가장 훌륭한 결과의 도출만을 위해 미국 사람들이 절차 준수에 목을 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만일 절차가 제대로 준수됐다면 이후 발생한 결과에 대해 따질 게 없게 된다. 결과에 대한 무조건적인 승복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지혜의 산물이 바로 엄격한 절차 준수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특한 관대함의 이면에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뻔뻔함도 함께 갖고 있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뻔뻔함의 핑계거리들을 대부분 결과에 이른 과정에서 찾곤 한다. 절차 준수와 결과 승복의 문제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문제와는 달리 답이 정해져 있다. 절차가 제대로 준수돼야 결과에 승복한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사람을 뻔뻔한 사람으로 매도하기 위해선 절차가 먼저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

결과가 잘못된 것이란 판단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보는 입장에 따라 모든 결과들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될 여지가 있고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따르면 모든 결과들은 입장에 따라 불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결과지상주의의 함정이 있다. 하지만 절차의 준수 여부는 객관적인 것이어서 누구나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엄격한 절차 준수를 통한 무조건적인 결과 승복은 아름다운 미덕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는 그 미덕을 가져야 한다.

민 기 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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