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부동(和而不同)

홍 성 훈 여주대학 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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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논어’를 읽다 깊은 인상을 받은 글귀 중 하나가 바로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원문은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나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이다”라고 돼 있다. 군자는 남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오직 남들과 휩쓸릴 뿐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일 게다. 참으로 옳은 얘기다. 인간이 개체적 존재이면서도 보편적 세계를 지향해야 함을 일깨우는 대단히 중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자기 세계가 뚜렷해질수록 남과 충돌하기 쉬운데, 그것은 자신의 세계는 옳고 다른 사람의 세계는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름’과 ‘틀림’을 혼동한 오류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여파는 상당히 크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갑작스레 안동 하회마을을 가보고 싶다고 해서 우리 국민들을 감동케 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화이부동의 좋은 예라고 본다. 다른 나라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속깊은 배려이기 때문이다. 그때 한국적인 것이 영국적인 것을 저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둘이 함께 어울려 더욱 조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줬다.

지구상에는 지금도 대립과 갈등 등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곳이 있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 완전히 사라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자신과 타인을 함께 존중하라는 화이부동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참다운 개성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세계를 튼튼히 구축해 나가면서도 그것 때문에 타인의 세계와 부딪히지 않고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게 아닐까. 단순히 남과 구별되는 것만이 진정한 개성은 아닐 것이다.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내면서도 남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리라! 가을 들녘에 나가보라. 노란 꽃, 빨간 꽃, 파란 꽃, 키가 큰 꽃, 작은 꽃…. 형형색색의, 각양각색의 꽃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면서도 한데 어울려 피지 않는가. 노란 꽃이 핀다고 파란 꽃이 언짢아 할 이유가 있는가? 노란 꽃이 있어 파란 꽃이 더욱 아름답지 않는가?

홍 성 훈 여주대학 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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