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이 되어야 축제도 된다

이 영 미 대중예술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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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란 한마디로 말해 날을 잡아 걸지게 잘 노는 것이다. 축제란 일을 멈추고 노는 것이지만, 사실 축제에서 노는 것은 일하는 기간 동안에 행해지는 수많은 것들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늘 일이 지겹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자신들이 일하는 방식으로 놀기를 좋아한다. 예컨대,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축구나 권투 같은 격렬한 운동을 좋아하는 것에 비해 머리로 일하는 사람들은 놀 때도 머리를 많이 쓰는 게임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싸움과 대립으로 움직이는 것이어서 그런지 놀이 중에는 그 본질이 싸움인 것들이 많다. 야구니 축구, 권투 같은 스포츠는 물론이고 화투나 인터넷 게임 등도 결국 본질은 싸움이다. 심지어 연극이나 토론회 등도 결국 맘 먹고 터 잡아놓고 사람 모아놓고 싸움을 벌여보는 것이다. 단 스포츠게임이나 화투, 인터넷 게임 등과 같은 것들은 승부가 분명하게 나는 싸움이지만 연극이나 토론회 등과 같은 것들은 그리 명료하게 승부가 갈리지 않는 싸움이기는 하다. 싸움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러가지 생각과 느낌 등을 받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이 놀이의 특징이다.

선수들을 뽑아 싸움을 시킬 때에는 제대로 싸워주기를 기대한다. 권투 구경을 갔는데 선수들이 슬렁슬렁 봐주면서 대강 싸우면 정말 재미없고 맥 빠지는 일이다. 토론회도 마찬가지이다. 논리와 지식 등으로 싸우겠다고 터를 벌였으면 전력을 다해 자신의 이야기를 개진하고 싸움을 걸고 맞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이런 학술토론회를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링 위의 선수들이 서로 봐주면서 잽을 날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혀 새롭지 않은 이야기들만 늘어놓고 모인 사람들끼리 서로 칭찬만 하다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태반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1일 경기문화재단 창립 제10주년 기념 심포지엄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만남과 소통, 그리고 난장’은 오랜만에 만나는 재미있는 싸움이고 축제였다. 사실 이런 주제로 심포지엄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올만한 이야기가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전통음악은 현재의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대중음악도 전통을 만나야 국적 있는 음악이 된다”, “만나고 소통하는 것은 중요하다” 등 이런 뻔한 주례사 같은 이야기들만 나오다가 말 수 있겠다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 날은 달랐다. 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부터 남산 한옥마을 토론장을 꽉 채운 관중들의 열기도 독특했거니와 무엇보다도 링 위의 선수들이 화끈한 펀치를 보여준 것이다. 이 가운데는 주례사 같은 이야기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김수철의 성과는 전통음악에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기타 연주의 손맛이 충실히 드러날 때 오히려 빛났다는 흥미로운 분석이나, 대중음악과 다를 바 없는 퓨전국악을 하는 사람들은 국악계 안에 숨어 있지 말고 대중음악계 안에 들어가 대중과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는 도발적인 주장까지 제기됐다. 전통음악의 대중성과 현대성 등의 빛나는 성과는 지식과 돈 등이 많은 제도권의 안이 아니라, 늘 제도권의 바깥에서 생겨난다는 분석도 나왔다. 심지어 발제가 부실한 선배 평론가가 후배 연구자에게 호되게 질타를 듣기도 했다.

시간이 없어 링 위의 사람들이 충분히 치고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싸움거리의 펀치를 충분히 날려줌으로써 이날 심포지엄은 말 그대로 ‘향연’이 될 수 있었다. 싸우려고 판을 벌였으면 제대로 싸워야, 축제도 제대로 되는 법이다.

이 영 미 대중예술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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