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여신상 눈을 가리자

장 정 은 경기도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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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有錢無罪)’나 ‘무전유죄(無錢有罪)’의 해묵은 문제가 최근 다시 불거졌다. 억대의 공금을 횡령한 대학 교수들이 몇천만원의 벌금형만 선고받고 말았다는 것이 언론보도를 통해 밝혀진 것이다.

어찌보면 이제는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유전무죄’라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이 보복폭행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재벌 회장에 이어 우리 사회의 최고 지식인 그룹이라는 대학 교수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게 다시금 드러난 것이다.

대법원에 가면 대법정 문 위에 정의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정의의 여신은 정의를 상징하던 그리스의 여신 디케(Dike)가 로마 신화를 통해 ‘형평성’의 개념이 추가되면서 유스티치아(Justitia)로 변모했고, 이것이 오늘날에 이어져 정의의 여신으로 형상화됐다고 한다.

서구 각 도시의 시청과 법원, 광장 등지에는 ‘정의와 형평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의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에 정의의 여신상을 세운 이유 역시 이런 의지를 드러내 보인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것은 서구 여러나라에 세워져 있는 정의의 여신상들이 대부분 얼굴에 눈을 가리는 띠를 두르고 있거나 눈을 감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 대법원에 세워져 있는 여신상은 눈을 가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의의 여신의 눈을 가린 이유가 법을 집행함에 있어 선입관을 갖지 않고 주관성을 배제해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돈이 많고 적음에 구애받지 않고 공평하게 법을 집행한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유독 우리나라에 세워진 정의의 여신상만 눈을 가리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설마 다른 의도가 있어 눈을 가리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호사가들은 우리나라 대법원에 세워진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유전무죄’나 ‘무전유죄’ 등의 판결들이 자주 나온다는 식의 그냥 듣고 웃어넘길 수 없는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한낱 조각상이 눈을 뜨고 있든 감고 있든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법 집행에 있어 정의와 형평성이라는 기본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이 소중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법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고,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수많은 가치와 원칙들 역시 사회적 합의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잊을만 하면 불거져 나오는 ‘유전무죄’의 현실을 어쩔수 없는 현실로 외면하거나 체념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우리 국민들 모두 정의의 여신상에 눈을 가리우는 일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

장 정 은 경기도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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