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네.” 필자가 일하는 책상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시구다. 고려 말기 선승인 나옹 선사가 쓰신 ‘청산은 나를 보고’의 일부분이다. 이 구절을 적어 책상 옆에 모셔 놓기 시작한 것도 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생활의 일부인 것처럼 하루에도 몇번씩 들여다보고 입으로 되뇌며 삶의 교훈으로 삼고 있는 시다.
하지만 그 깊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사람이 욕심 없이, 미움 없이 산다는 게 가능한 것일까. 깊은 산 속에서 홀로 수도하는 게 아니라면 과연 세간에 살면서 욕심을 버리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욕심이 반드시 재물을 탐하거나 권력이나 명예를 좇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철저한 건강관리나 가족에 대한 극진한 사랑, 학문적인 탐구 등도 욕심의 한 종류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애당초 사람이 욕심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미움도 마찬가지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때때로 미워지는 게 세상 사는 이치다. 뺨을 맞고 반대쪽 뺨을 또 내주면서도 미운 감정이 들지 않는다면 대단한 성인(聖人)이거나 이미 죽은 사람 둘 중 하나가 분명하다. 세상을 살면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면 이미 그는 사람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뜻이다. 사람이 욕심이나 미움 없이 살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매일 매일 세상을 살다보면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순간마다 욕심과 미움의 감정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도 나옹 스님은 욕심을 버리고, 미움을 버리라고 우리들에게 가르친다. 아마도 욕심과 미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일 것이다.
모두가 가슴 속에 품은 욕심과 미움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여유로워 질 게 분명하다. 선승의 가르침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는 지혜는 없더라도, 그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삶이 되고 싶다.
서 정 호 인천항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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