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빛

조 용 주 두리한의원 원장
기자페이지

우리의 삶에서 보고 듣는 것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단조로워질까? 눈과 귀는 몸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 세상 밖을 알기 위해 소리를 감각하는 기관과 빛을 감각하는 기관 등으로 각각 진화돼 왔다. 일반적으로 소리를 잘 들으려면 눈을 지그시 감는 게 나은데 눈을 뜨면 보고 듣는 게 뒤섞여 혼돈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지금은 보는 게 듣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세상이고 보는 것을 기준삼아 살지만, 옛날의 동양에서는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듣는 것을 세상의 근본으로 삼았다.

‘서경’을 보면, 예전 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황종이라는 종과 같은 악기를 통해 각 제후 나라들의 소리를 맞추고 이 소리를 기준으로 세상의 기틀을 세웠다. 그 방법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우선 황종에다 기장과 같은 곡식을 채워 그 채워진 알곡을 기준으로 부피와 무게를 정했고, 기장이 채워지는 황종의 길이를 기준으로 길이를 규정했다. 실생활에 가장 기본이 되는 도량형을 황종과 같은 악기의 소리를 기준으로 정했으므로 황종은 만사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천자문’에서 ‘율려조양’이라고 한 구절도 바로 소리의 기준이 되는 율려로 천지음양의 기운을 고르게 한다는 의미인데 황종이 바로 이 12율려의 으뜸이다.

이처럼 동양은 들리는 소리를 기준으로 다스려진 문명인데 반해 우리가 사는 지금의 현대 서구문명은 보이는 빛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다만 빛과 소리의 차이일뿐인데, 옛날과 지금의 세상 모습은 이처럼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빛의 문명은 화려하게 보이지만 소리의 옛 문명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유명한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굴드는 “과학이 변화하는 건 절대 진리에 가깝게 다가가기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이 변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과학이 절대 진리를 나타내는 게 아니고 과학도 세상의 모습에 따라 변하면서 그 때에 따라 담아내는 문화의 모습을 표현한 것뿐이라고 잘라 말한 것이다.

서구의 문물은 보고 분석해야 하는 것이지만 동양의 문물은 가만히 듣고 음미해야 한다. 참 다르게 느껴진다. 소리는 고요하고 한가할수록 알아듣기가 쉽다. 그래서 동양의 학문은 늘 빈 공간과 한가로운 여가가 필요하고 달처럼 어스름한 세상을 느낄 수 있을 때 이해하기 쉽다. 눈에 보이는 세상처럼 분명하게 구분되고 디지털처럼 애매모호함이 없는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다는 아닌데 다들 보이는 것만 요구한다. 살면서 가끔은 눈을 감고 조용히 세상을 들여다 보고 밤하늘의 별과 달 등을 느껴보자.

조 용 주 두리한의원 원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