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문제

사람들은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가끔 혼돈스러울 때가 많다. 세상에는 워낙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기 때문에 저마다 생각이 다르기는 하지만, 어차피 이 둘 중 하나에 속할 것이다. 이 둘의 차이가 어떻든지 간에 먹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데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세상이 변하면서 음식들이 참 많이도 달라졌다. 음식이 입에 맞고 마음에 들면 우리는 맛깔스럽다는 표현을 하게 되는데, 요즘 맛깔스러움은 주로 시각적으로 보기 좋고 예쁜 맛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 변해 가고 있다. 그래서 갈수록 음식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어지고 단지 보기 좋고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우리는 눈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는데, 눈은 뇌에 딸린 감각기관이다. 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해부학을 하게 되는데, 뇌를 해부하면 눈이 뇌에 붙어 딸려 나온다. 그래서 눈은 뇌가 밖을 감각하는 통로가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서구의 문명을 중심으로 했다. 그런데 서구의 과학문명은 빛을 통해 보는 시각을 이 세상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세상을 모두 시각 중심으로 바꿔 놓았다. 예쁘게 보이려고 성형수술을 해야만 하고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같은 시각매체를 통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길이와 시간의 기준 조차도 빛과 보는 시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도무지 보지 않고 살아가질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눈을 지배하고 있는 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몸에는 뇌가 완전히 지배할 수 없는 구역이 따로 있는데, 바로 소화기다. 소화기는 장신경총이라는 뇌와 흡사한 신경계를 이루고 자율적으로 조절되고 있다. 그런데 이 소화기는 눈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기관이 아니어서 눈이 좋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진 음식을 먹고 토하거나 설사를 하기도 한다. 눈으로 보아서는 멀쩡한 음식이었지만 소화기인 장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부적절하거나 더러운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그저 눈으로 보고 평가하고 보이는 것에 따라 마치 미쳐 날뛰듯이 움직인다. 하지만 우리 몸에는 엄연히 소화기와 같이 세상을 차근차근 더듬으면서 직접 느껴가며 살아가는 기관들도 있다. 소화기가 느끼는 세상은 맛을 보는 세상이다. 아마도 뇌의 학습에 의해 맛을 인식하는 방식을 변형시키지만 않았다면 인스턴트 음식이나 패스트푸드와 같은 음식들을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오로지 머리를 써서 보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하루에 한번쯤이라도 우리 몸속의 소화기가 하는 것처럼 세상을 느끼며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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