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예술 ‘노마드’

노 경 화 멀티미디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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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20대 후반인 필자의 제자 개인전이 있었다. 석사학위 청구논문 전시여서 오프닝의 관객들은 미대 교수들과 미대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때 참석한 프랑스 대사관의 기술담당관 부부가 필자에게 한마디 쓴 소리를 했다. 적지 않은 개인전 비용을 학생이 모두 감당한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작품이 단 한점도 팔리지 않은 것을 보고 새내기 작가를 걱정해주기까지 했다. 전시가 끝나고 제자는 “작품에 관심 있어 하는 관객들이 작품 가격을 묻고는 한결같이 ‘비싸다’고 했다”고 말했다. 참고로 제자가 부른 작품비는 액자와 물감 비용 정도 받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전업작가인 후배를 만났는데 “자신의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어도 공짜로 달라는 사람은 아주 많다”며 자조적인 소리를 했다. 또 다른 한 작가의 부인은 별로 비싸지도 않은 남편의 작품비를 상식 이하로 깎으려는 사람에게 “작품 사지 마시고 그냥 감상만 하세요”라며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국립 에꼴 데 보자르(국립고등미술학교)’와 미술대학의 1년 동안 학비는 30만원 선이며 보자르는 우리나라 석사과정 2년차에 작품 재료비로 학생 1인당 26만원 정도 지원해준다. 졸업을 위한 개인전은 보통 대학 내 갤러리에서 무료로 열며 오프닝 비용이나 엽서 비용 등도 마찬가지다. 학생이나 작가들이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나 공공기관 등이 운영하는 갤러리나 미술관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게 될 경우에도 전시 1~2년 전 포트폴리오를 제출해 심사에 통과하면 무료로 전시하게 된다. 전시 장소가 다른 도시일 경우 숙소까지 제공받는다. 물론 대관하는 갤러리들도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현지 작가들이나 학생들은 이용하지 않는다.

미대 교수들은 학생들의 작품이 좋으면 직접 작품을 구입하기도 하고 사회에 나가 학생들이 노련한 갤러리스트들을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 실질적인 교육을 시킨다. 작가가 화상들에게 끌려 다니는 일을 사전에 방지하는 교육인 셈이다. 작품을 구입하는 콜랙터들은 대부분 작품비를 깎지 않고 지불하는 환경에 익숙하다. 콜랙터들은 작품이 좋아 사는 것이지, 그 작품으로 돈을 벌기 위해, 즉 투자 목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 모든 세금은 19.8%가 기본이다. 그러나 식품, 책, 그림 값 등 이 세가지 세금은 5.5%로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다. 작가가 실업상태면 실업수당으로 월 70만~80만원 정도 최소 생계비용을 지급받을 수 있다. 프랑스 미협에 소속된 작가들은 일반인들 보다 싼 3분의 1 가격에 주거 겸 작업실을 마련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많지만 협회에 신청하고 1~2년 기다리면 임대가 가능하다.

필자가 유럽에서 각국의 예술가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비디오 아티스트의 대부인 백남준을 독일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들의 대부분은 백남준이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백남준은 독일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의식 저변에는 백남준이 작가로 성장하게 된 배경 뒤에는 모국인 한국이 아니라 독일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현재 국제무대에서 유일하게 통하는 한국작가 이우환(71)은 한국 태생이지만 일본과 파리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가 만난 유럽 작가들은 이우환을 일본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들이 한국에 남아 작업했더라도 세계미술사에 족적을 남겼을까에 대해선 의문이다. 물론 모두가 고국을 등지고 예술환경이 좋은 타국에 나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개인의 이유 있는, 예술 노마드의 배경에서 척박한 한국의 예술환경을 읽는다는 것은 진정 안타까운 일이다.

노 경 화 멀티미디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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