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대학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도시개발 최고정책과정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도시 기능과 조화된 항만개발’이 주제였던 이날 강의에 참가한 수강생 대부분은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 책임자들과 건설회사, 설계회사의 임원들이었다.
항만 관계자인 나로서는 모처럼 도시개발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귀중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외람되게 도시계획과 관련한 세 가지 부탁 말씀을 드렸다.
첫 번째 부탁은 항만시설과 주거시설이 뒤섞이는 도시계획을 수립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상업지역이나 공업지역과 달리 주거지역은 항만물류기능과 충돌할 소지가 너무 많다. 인천항 연안부두와 남항 일대에서 항만시설과 주거지가 뒤섞이게 된 도시계획은 대표적으로 실패한 사례 중 하나다. 이로 인해 빚어진 국가적 낭비는 항만과 도시 모두에게 큰 피해를 줬다.
두 번째 부탁은 항만물류교통과 도시교통을 최대한 분리시켜 달라는 것이다. 시민들이 항만 때문에 피부로 느끼는 가장 큰 불편은 대형 화물트럭이 시내를 달리면서 만드는 소음과 진동, 먼지, 교통사고의 위험 등이다. 지역주민의 사랑을 받지 않는 항만은 발전하기는 커녕 생존하기도 어렵다. 반드시 지역주민들의 생활편의를 보장할 수 있는 도로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 당부는 항만 주변의 부지는 가능한 물류시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계획 담당자들은 항만 주변의 빈 땅을 주거단지화 하거나 상업시설로 채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당장의 필요에 의한 성급한 결정은 반드시 미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지금 당장은 비어있어도 먼 장래를 보고 항만 주변은 최대한 물류기능으로 특화시키는 것만이 항만과 도시를 공존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항만은 한번 만들어지면 최소한 50년 이상 물류기능을 책임져야 하는 중요한 사회간접자본이다. 현재의 판단으로 일을 처리하면 10년, 20년 후에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위에 언급한 3가지 부탁은 인천신항이나 아암물류단지 등을 계획하고 개발할 때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래야만 항만과 도시가 조화롭게 공존하며 공동 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 이런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지금 인천 내항에서 벌어지는 도시기능과 항만기능의 충돌이 20년 뒤에 송도국제도시에서 또 다시 재현될 수밖에 없다.
/서정호 인천항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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