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에 입주해 ‘팔팔 할머니’라고 불리는 어르신이 계셨다. 이 할머니께서는 건강해서 모든 프로그램에 잘 참석하고 법당에도 나오시며 본인 일은 본인이 챙기려 노력하시는 어른이셨다. 어버이날 시설의 대표로 청와대도 다녀와 청와대에서 선물받은 손목시계를 자랑하고 싶어 시계를 찬 왼손목의 옷자락을 항상 올리시는 멋있는 할머니이기도 하다.
어느 때 부터인지 나만 보면 “일찍 죽어야지”하신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말씀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만날 때 마다 반복하시니 남달리 들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또 “죽어야지”를 반복하자 옆에 있던 복지사가 “어르신, 그렇게 저 세상으로 가고 싶으세요? 정말 돌아가시고 싶으시면 매일 법당에 가셔서 빨리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눈을 흘기시더니 그 이후론 복지사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고 한다.
몇 개월이 지나 방에서 화장실을 가다 넘어져 급히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를 받았으나 골반뼈가 손상돼 수술도 할 수 없었고 20여일이 지나 휠체어에 의지한 채 퇴원했다. 이제는 스스로는 걷지 못하신단다.시설에 오셔서 여러 날 식사를 거르는 등 의욕이 없으셨다. 걷다가 걷지 못하게 됐으니 오죽 상심했을까. 현실을 이해시키기 위해 직원들이 무던히 아양을 떤 지 1개월이 지나서야 일상생활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면서 이제는 또 다른 소원이 생겼다. “죽어야지”하는 말은 온데 간 데 없고 누구를 만나든 “햇빛 좀 보았으면”이 소원이시다. 답답하니까 데리고 나가 달라는 말씀이다. 마음대로 다니실 때는 알지 못했던 밖의 그리움이 더 절박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렇다. 죽고 싶다는 말은 극단적 표현을 통해 상대에게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지, 진실로 죽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몸이 불편하니 더욱 살고 싶으신 모양이다. 옛 말에도 ‘논 둑을 베고 살아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있듯이 생명을 가진 존재는 생명을 연장하고 더 살고 싶은 것이 존재본능이다.
노인이 될수록 외로움을 많이 타신다. 어린이처럼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시설에 살다보면 항상 사랑을 갈구하는 어르신들의 진한 눈망울을 마주한다.
/김각현 경기도노인복지 시설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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