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는 두개의 세계가 있다. 선택이나 변화가 불가능한 세계와 가능한 세계, 말이다. 전자는 자신의 자유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주어진 세계를 말한다. 한사람이 언제 어디서, 어떤 부모 아래서, 어떤 이름을 갖고, 어떤 성별로 태어나는가. 즉 선택이나 변화가 어려운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세계에서 인간은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내던져진 존재’로서 강변에 무수한 모래알이나 조약돌 같은 존재다.
또 하나는 선택(변화)이 가능한 세계인데, 개개인이 모두 실존적 주체로서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형성해 가는 세계를 말한다. 인간은 선택하고 창조한만큼 존재하며, 자기 삶의 주체가 되고 우주의 중심이 된다. 동물과는 달리 인간에게는 이 두 세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삶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지만 한편으론 흥미진진한 인생 드라마를 엮어 내기도 한다. 두 세계가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대응방식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선택(변화)이 불가능한 세계는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개인의 책임이 아니기에 자신이든 남이든 탓할 필요가 없고, 변화시킬 수 없기에 번민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선택(변화)이 가능한 세계는 전적으로 개인의 영역이고 책임이기에 늘 노심초사하며 최상·최선의 삶을 가꾸려 노력해야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도 따지고 보면 두 세계에 대한 대응방식의 차이를 일컫는 말이리라. 선택(변화) 가능한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더 이상 연연하지 말라는 뜻 아닌가! 그런데도 두 세계를 거꾸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어 문제다.
두 세계의 존재를 인식하고 서로 달리 대하지 않는 한 인생의 의미도, 보람도, 행복도 찾기 어려울 텐데 말이다. 필자는 가정 형편 때문에 성장기를 참으로 어렵게 보냈다. 덕분에 인생과 세상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이는 거친 ‘마이웨이’를 힘차게 헤쳐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어느새 여름이 오고 있다. 계절의 순환, 세월의 흐름이야 선택(변화)이 불가능한 세계지만,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꾸려가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이고 책임이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의 증거이고 보람이다.
/홍성훈 여주대학 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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