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나 싶었는데, 어느 덧 계절은 벌써 여름의 한 가운데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조금 남아 있지만, 한 낮에는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자연스럽게 그늘을 찾아들게 된다. 태양의 열기가 강해짐에 따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지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이럴 때 사람들이 오가는 길 위로 시원한 가로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뿐만 아니라 기분도, 그리고 삶도 훨씬 여유로워 질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보행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보행권’이라는 말이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 1993년 녹색교통운동이 보행권신장을 위한 시민걷기대회를 개최하면서 부터이다. 일찌기 자동차화(Motorization) 사회의 폐해를 먼저 경험했던 서구의 일각에서 ‘보행자 우선권’이란 단어를 쓰기 시작한 지 30년 정도 지난 후에 한국 사회에 ‘보행권’이라는 말이 소개되기 시작했으니, 꽤 긴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념조차 생소했던 ‘보행권’은 한국에 소개된 이후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속에 사회적 이슈로 자리잡게 된다. 그 결과 지난 1997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서울특별시 보행권 및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기본 조례’가 제정됐고 지난 2002년에는 경기도 역시 보행권 확보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게 된다.
이후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전국의 거의 모든 자치단체들이 앞다퉈 보행권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문제는, 경기도는 물론 일선 시·군이 앞다퉈 제정했던 보행권 관련 조례들이 지금은 유행이 지난 옷 처럼 관련 자치단체들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차 잊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 도로의 주인은 자동차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만큼 모든 도로들이 자동차 위주로 돼 있고, 그 나마 있는 보행자도로 마저 상가 진열대와 간판, 각종 도로 시설물 등으로 인해 맘놓고 걸을 수 없는 형편이다. 경기도 보행권 조례 제4조는 “모든 주민들은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권리 위에 잠자는 자의 법익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처럼 주장하지 않는 권리는 허상에 불과하다.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말끔하게 정비된 거리를 걸으며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수릴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보행권’ 확보를 위한 노력과 관심을 놓치지 않아야 겠다.
/장정은 경기도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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