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수의(韓紙壽衣)

김각현 경기도노인복지 시설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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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윤달에다 600년 만에 오는 황금 돼지해라고 하여 결혼도 많았지만 장례용품으로 수의도 많이 판매된 해라고 한다.

윤년에 부모님의 수의를 마련해 놓으면 그 부모님이 장수한다는 속설 때문에 자녀들이 구입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윤년이 되면 수의 판매가 증가하는 것은 확실하다.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위해서 자녀들이 옛 선조들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라면 권장할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구입하고자 하는 수의의 품질이 문제다. 미리 장만해 놓는 수의는 대부분 값비싼 삼베용품인데 값싼 중국산이 시장에 활개를 치고 있다. 품질의 내용은 고사하고 삼베라면 무조건 선호하다 보니 진짜 삼베가 아닌 줄 알면서도 삼베흉내만 낸 물건이라도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평생을 한국에서, 한국음식을 먹고, 한국식으로 살다 가신 조상님께 마지막 입고 가시는 옷을 중국산으로 치장하여 보내 드려야 되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원래 삼베수의는 매장문화에서나 필요한 장의용품이다. 일반 면직물보다 잘 썩기 때문에 매장하는 장례법에는 이보다 더 좋은 품질은 없었다. 매장문화를 강요했던 조선시대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될 상거래일 지 모르지만 지금은 화장률이 60%를 넘는다. 10명이 사망하면 6명이상이 화장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매장문화에서나 선호해야 할 삼베수의가 조잡한 중국산을 들여오면서까지 전통을 유지해야 하는가 회의가 들 때가 많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지(韓紙) 제조공장을 하시는 분이 한지 수의(壽衣)를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며 남녀 수의 한 벌씩 기증했다. 펼쳐보니 재질과 제작 솜씨가 뛰어나다. 고려시대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한지수의를 복원했다고 한다. 한지 수의를 펼쳐보는 순간 우리 조상들의 번득이는 지혜를 발견한 양 환희가 몰려온다.

매장을 강요했던 시대를 500년이나 살아왔던 우리사회에 이제 이유야 어떻든 화장 문화로 장례의례가 바뀌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장례절차나 장례용품까지도 화장제도에 맞게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례나 풍습을 바꾸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매장 시대에 유행했던 전통을 화장으로 장례문화가 바뀌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고집해야 하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다시 화장문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 세대에 한지 수의의 도입은 선조들의 지혜를 오늘에 되살리는 탁월한 선택이 아닐까. 5월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우리의 장례문화를 생각해 본다.

/김각현 경기도노인복지 시설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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