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 가면 저절로 마음이 편해진다. 아니, 비단 고택만이 아니다. 우리 전통 한옥은 언제 찾아봐도 마음이 편하다. 빗물조차 흐름에 막힘이 없도록 배려된데다 생활공간도 자연과 어울리는 소재로 사람의 마음이 편해지는 낮은 담과 마루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문화재로서 보호받으며 그 흔적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한옥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데, 그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절정에 다다르는 곳이 바로 남양주에 위치한 궁집이다.
춘천으로 가는 43번 국도를 따라가다 남양주에 이르면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가 살았다는 궁집을 만날 수 있다. 궁집은 말 그대로 왕족이 살던 집을 말하는데, 세자를 제외한 다른 왕족들이 결혼해 분가하면 나라에서 지어준 집이다. 남양주 궁집은 왕족이 살았다는 집 치고는 소박하다. 다듬은 돌을 사용한 것을 제외하면 다른 명문가의 집과 비교해도 남아 있는 안채와 사랑채의 규모가 크지 않아 검소한데, 그래도 우리 마음을 한없이 받아주는 게 넉넉한 느낌이다.
그런데 최근에 찾아본 궁집은 작아도 너무 작아졌다.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한옥 고유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고 옛 고향집을 방문하는 것만 같았던 느낌도 없어졌다. 집의 원래 목적은 사람이 사는 것이다. 비바람을 막고 햇살을 막아 사람이 모여 살게 하는 게 집의 본디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 궁집에는 사람이 살지 않으니 결국 점점 쓰러져가는 것 같다. 중요 민속자료로 등록만 됐지, 가꾸는 이가 없는 탓이다. 나라 차원에서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니 개인이 나서 어떻게든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는데 아무래도 혼자 힘으로는 무리가 있다.
우리 역사가 숨쉬는 곳이, 우리 전통 건축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현장이 방치되는 것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다. 그 고유의 역할을 살려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꾸며주면 공주가 머물렀던 소박한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도 즐거울 것이고 돌아가신 화길옹주도 즐거워하실 것 같다. 그 원형은 그대로 보존하되, 집 본연의 기능을 강화해 모든 사람들이 역사와 전통건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열어둘 방안을 모색해야겠다. 공간의 특징을 살린 한옥 체험장도 괜찮을 테고, 다도체험을 하며 잠시 머물러 쉬어가는 곳이어도 괜찮겠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단순한 과거로 송두리째 묻히는 아쉬운 사태만은 일어나지 않길 소망해본다.
/임병수 경기관광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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