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탐섬에서

임병석 수원시 장안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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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천둥과 번개가 요란했다. 여기는 인도네시아의 바탐섬. 싱가포르에서 1시간 거리인데 인도네시아 섬 중 손꼽힐 정도로 크다. 그 밤이 지나고 창가로 비쳐진 아침 햇살에 잠이 깼다.

우거진 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유난히도 요란을 떨었던 밤과는 대조적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물결이 눈부시다. 더욱이 가까이,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어우러져 시야에 담긴 풍경은 아름답기만 하다. 무릉도원이 따로 있나. 이만하면 천당이지.

곁에서 새들이 합창을 한다. 가끔 높고 낮게, 길고, 짧게, 부드럽고, 아름답게, 간간히 반주도 빼놓지 않고 “꾸르륵…” 목청 높여 추임새까지 넣어주는 놈도 있다. 가히 새들의 천국이다! 지상낙원에서 자연의 합창을 듣노라면 잠시 복잡한 상념에서 벗어나 꿈속인 듯 아름답다. 향기로운 스카치 한잔을 음미하다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다.

필자가 머문 호텔은 4성급이다. 여행을 많이 다녀 보았지만 방가로 호텔은 처음 경험한다. 옛날 필자가 살던 시골처럼 뒤에는 작은 산이 있고 앞에는 멋있게 구부러진 고목나무가 있으며 시냇물이 흐르는, 호사스런 풍경은 아니지만 정감 넘치는 시골집 툇마루 같은 곳이다. 게다가 앞에 바다가 훤하게 보이도록 계단식으로 꽤나 많은 방가로들을 지었는데 전통 말레이시아 양식이다. 지붕은 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남다르게 뾰족하다. 고풍스러운 궁전식도 아니고 흔한 현대양식도 아닌 야자수 나무 잎으로 꼼꼼하게 얽어매어 놓았기에 정겹다. 1층은 사각에 기둥을 세워 빈 공간으로 남겨뒀다. 습기를 피하고 뱀이나 들짐승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으려는 지혜의 산물이다. 계단을 오르면 입구 문이 나타나는데 호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드 열쇠가 아니고 시골 여인숙에서나 볼 수 있는 쇳대를 열고 들어서게 돼 있어 투박하기 짝이 없다.

반면 안으로 들어서면 침대위에 4각 모기장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쳐져 있고 그 옆에 의자와 탁자는 등나무와 대나무로 엮어 클래식한 느낌을 더해준다.

한참 식사 중 종업원이 “사랑해”라며 노랫말로 흥얼거린다. 옆에 일행들이 노래를 부르라고 박수를 친다. 우리가 흔히 보아온 호텔 식당에선 어림도 없는 광경이다. “예, 예, 예…. 사랑해~당신을…” 발음도 서툰 외국인의 우리 노래가 정겹다. 이 섬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순응하며 살아서인지 여유가 있고 넉넉하며 낙천적이다.

이곳에서 이틀 밤을 지낸 게 꿈같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다시 돌아와 떠날 준비를 하다 아쉬움을 달래려 침대에 누웠다. 바다와 맞닿은 구름 한점 없이 깨끗한 하늘….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자니 기다리는 버스 시동 소리가 원망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 인생도 헤어지고 떠나게 돼 있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이런 마음공부를 하며 바탐을 떠났다.

/임병석 수원시 장안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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