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간지 미술기사는 단연 호황을 맞은 미술시장에 관한 이야기가 대종을 이룬다. ‘미술계 봄맞이’를 시작으로 ‘이젠 부동산 팔아 그림에 투자해볼까’ ‘미술시장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우아한 돈벌이 아트테크를 아세요?’ 등등 선정적인 제목과 기사들이 판을 친다.
더욱이 그동안 미술계에서 전혀 들어 보지 못했던 블루칩, 아트펀드, 아트테크, 개미군단, 펀더멘털 등 주식시장에서나 통용되던 용어들이 그대로 미술시장에서도 난무한다. 일찍이 보지 못하던 현상이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지독한 불황을 겪어온 미술시장으로서는 이 극적인 반전에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불황이 깊은 나머지 국가에서 ‘미술은행’을 설립하고 매년 25억원 안팎의 예산으로 그림을 구매하여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한 극단의 처방까지 내릴 정도였다. 이러한 미술시장 호황의 일차적 수혜자는 당연히 작가들이다. 좋은 일이다. 그동안의 불황으로 대부분 작가들의 생활은 극도로 열악해져 극빈계층으로 분류될 정도였다. 불과 두 달 전, 한 미술문화연구소가 조사 발표한 통계만 보아도 대부분의 미술가의 경제적 현실이 고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해 1월 31일까지 전국 시각예술인 1천38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를 보면 30.4%가 월수입이 없다고 답했고, 월수입이 100만원 이하라는 응답도 27.6%나 됐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사이 미술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이제 미술계의 여건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많은 작가들이 지난날의 어려움을 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결코 좋은 작가의 작품들이 팔리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수준 높은 작품보다 오히려 대중취향의 작품과 일부 인기 작가들에 편중된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작고작가나 일부 원로작가의 경우 대체로 미술사적으로 평가된 작품성과 유통의 희소성으로 인해 인기를 끄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지만, 일부 젊은 작가들의 경우 비평적 관점이나 미술사적 평가의 잣대도 없이 잘 팔리고 있는 현상은 결코 반길 일이 아니다. 창작의 본질과 그에 따른 예술적 진정성이 없이 유행을 좇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작품들은 구매자들이 단순히 감상을 위해 소장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다. 그러나 최근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화랑이나 경매사, 전시기획사들이 이를 투자의 대상으로 부추길 경우 자칫 재능 있는 작가들이 훗날 성취해야 할 예술적 성과가 일시적으로 소모될 우려가 크다. 재테크를 위해 투자하는 컬렉터 또한 마찬가지이다.
실제 필자가 지난달 요즘 미술시장을 달구고 있는 아트페어를 몇 차례 돌아 본 후 과연 지금의 호황이 건강하고 바람직한 미술시장의 구조인가 의구심을 갖게 됐다. 그림이 잘 팔리는 젊은 작가 중에는 물론 참신하고 창의적인 작품을 내놓은 경우가 있었지만, 대부분 지난날 유행한 사조의 회화작품으로 판매실적을 올리는 작가들이 많았다. 소재만 조금씩 다를 뿐 실물을 확대하거나 과장하여 사진처럼 그리는 식의 이들 작품은 과거 60~7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팝아트나 극사실주의의 재탕이며 우리나라도 70년대 후반 유행했던 사조의 되풀이에 불과했다.
미술사적으로 평가되지 않는 작품은 결코 생명력이 오래가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도 미술사에 편입된 작품은 반드시 미술시장으로 흘러 자연스럽게 유통되어 왔지만, 반대로 미술시장에서 인기 있었던 작품이 미술사에 편입된 예는 흔치 않다. 시류에 영합하는 작품은 일시적인 상품성을 가질지언정 어느 시점에서 반드시 거품은 꺼지고, 작가는 매몰되고 만다. 오늘의 젊은 작가들이 경계해야 할 대목이며, 미술시장에 연연하기에 앞서 건강한 작가정신을 가다듬을 때다.
/이 종 구 중앙대 예술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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