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임병석 수원시 장안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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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필자도 감상적이다. 봄비가 내리고 나서 세상이 봄의 에너지로 충만해졌기 때문이다. 필자의 사무실 창에서 보면 조그마한 정원이 하나 있다. 정원에는 페튜니아 꽃이 환하게 웃으며 해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노랑, 주황, 하얀색 등이 조화를 잘 이뤄 아름답다. 그 너머로 그리 높지 않은 조그마한 산이 산수화처럼 펼쳐져 있다. 작은 산이지만 창가에서 보는 산은 창문에 꽉 차 있다. 이 산자락은 광교산자락이다. 다른 산자락은 거의 주거지로 변했지만 아직 남아있는 자존심이다. 주변의 아파트 고층건물이 주거지를 이루고 있는 시가지, 회색도시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전망이 꽤나 좋은 곳이다. 그래서 행복하다.

이곳은 근대화와 더불어 우리 수원 발전의 모태였던 선경직물과 양대산맥을 이뤘던 한일합섬 공장이 자리했던 곳이다.

어느덧 진달래도 활짝 피어났다. 앙상한 가지에 겨우 꽃무늬가 있는 속옷을 입은 형상이지만 하루가 달라지게 풋풋함이 더해지고 있다. 창밖을 보니 까치 한두마리가 무엇인가 입에 물고 집을 짓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힘들면 쉬는 시간에 서로 사랑을 확인하기도 하는 장면을 간간히 볼 수 있다. 못난 남편을 만나 고생을 하는 아내 생각도 난다.

이렇게 자연은 인간에게 정서적으로 많은 것을 준다. 마음이 소란스럽고 산만해 질 때마다 시성(詩聖) 타고르가 그리했던 것처럼 조용히 “내 마음이여…”라는 기도를 하게 된다. 배불리 먹는 게 인간의 지상과제였던 시대를 지배했던 과학과 기술이 이제는 내면의 윤리도 사라지게 하고 오직 생존의 목적만이 남아 생태계까지도 파괴시키고 있다. 발전이 항상 옳은 건 아닌 것 같다. 당장의 편안함과 편협한 생각으로 목전의 이익만 생각하면 우리 자자손손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 미래를 바라보면서 한발 늦게 생각하고 한발 늦게 개발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기에 창가에서 바라보는 산이 있고, 꽃과 나무가 있고 까치와 새들이 집을 짓는 것을 바라보고 느끼는 내 마음이 있다.

필자는 5년 전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했다. 당시만 해도 앞에 산과 들이 펼쳐져 있었는데 이제는 아파트 숲이 들어섰다. 수천년, 수만년, 수억년 등을 이어온 산하들이 개발이란 인간의 식성 앞에서 한끼 식사에 불과하던가?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 예고 가는 고//” 봄 탓인가? 나이 탓인가? 생각이 예민해지고 가끔 잠을 설칠 때가 잦아진다. 옛 애인처럼 이 계절의 산과 들이 그리워진다.

/임병석 수원시 장안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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