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선진국대열에 있는 일본이 왜 조선의 찻사발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일본 역사상 최고로 추앙받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 찻사발에 매료됐고, 그의 권력을 승계한 도쿠카와 이에야스(德川家康)도 조선 찻사발을 다도(茶道)를 하는데 최고의 찻잔으로 인정하면서 조선 찻사발은 그 가치와 위력은 더해갔다. 조선 찻사발을 발견하기 이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황금다실(茶室)에서 황금찻잔으로 차를 마시면서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과시했다. 뛰어난 전술과 전략으로 일본 전역의 성주들을 굴복시키고 일본 천하를 통일한 그가 어쩌면 황금다실(茶室)에서 황금찻잔으로 차를 마신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우연히 센노리큐(千利休)라는 다승(茶僧)을 만나고 나서 그의 호화롭고 사치의 극을 달리던 차생활은 禪(선)과 道(도)와는 먼 것이란 것을 점차적으로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한국의 작은 초가집 같은 초라한 다실(茶室)에서 투박하고 소박한 조선다완으로 다도(茶道)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오만한 자존심을 건드린 다도(茶道)스승 센노리큐에게 애석하게도 할복을 명해 죽게 한다. 이후 그는 다도(茶道)스승의 다도에 대한 가르침을 못내 잊지 못하고 다도(茶道)스승이 남겼던 조선다완을 보물로 간직하며 다회시(茶會時)에만 조심스럽게 사용하다 생을 마감한다.
정확하게 밝혀진 건 아니지만 현재 다수의 역사학자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스승이었던 센노리큐가 조선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당시 다실(茶室)이 한국의 초가집 형태이고 찻그릇이 조선그릇이라는데 있다. 이후 조선다완은 일본 다도계에서 다회(茶會)를 하는데 있어 최고의 찻그릇으로 여겨지게 돼 마침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됐으며, 당시 조선에서 건너간 다른 많은 찻사발들도 문화재 등으로 지정돼 오늘날까지 소중하게 보존돼오고 있다.
조선다완이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지는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면 더욱 더 확연해 진다. 수년 전 일본 교토에서 열린 고려다완전 기조강연에서 당시 동경국립박물관장이었던 하야시아씨는 “이토록 오랫동안 일본인들의 마음 깊숙이 들어와 감동을 주고 경건한 신앙의 대상으로 떠오른 물건 가운데 조선의 다완(찻사발)같은 게 어디에 또 있을까”라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르짖었다. 그의 집안은 우리가 막사발이라고 흔히 부르는 조선다완을 400여년동안 신앙의 대상이자 보물로 간직해 내려왔다.
이처럼 우리가 막사발이라고 부르며 하잘 것 없는 그릇으로 여기던 도자기가 일본에 건너가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격상돼 국보로 추앙받는 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아니면 다른 문화배경에서 오는 미의식(美意識)의 차이일까? 실로 아이로니컬하다 아니할 수 없다.
/윤준식 신협중앙회 인천경기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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