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길과 생업의 길

이 종 구 중앙대 예술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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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졸업생들을 내보낸 캠퍼스의 3월은 긴 겨울방학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로 활기가 넘친다. 특히 새로 입학한 새내기들의 해맑고 생기 넘치는 표정을 보면 그들과 마주치는 우리조차 벅찬 꿈과 희망의 기운이 샘솟는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공연분야를 비롯해 시각예술 등 여러 예술분야의 전공이 설치돼 있다. 그래서 캠퍼스엔 장래의 예술가를 꿈꾸며 공부하는 학생들로 넘쳐난다.

그 중 필자가 가르치는 과목은 순수미술창작이다. 학생들은 장래에 작가(화가)가 되기 위해 다양한 교육과정의 이론과 실기 등을 공부한다. 그런데 특기할 점은 경제불황과 생존경쟁이 치열한 이 시대에도 미술대학 순수미술 전공 졸업반 학생들은 취업을 걱정하거나 이를 위해 면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학생도, 교수도 취업에 관한 한 초연한듯 지내지만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그런 탓에 다른 전공과 달리 순수미술 전공 교수들은 졸업시즌이 돼도 졸업생들을 위한 취업 걱정이 없이 비교적 ‘편하게’ 지낼 수가 있다. 오직 훌륭한 작가로 키우기 위해 4년 동안 열심히 가르쳤기에, 선생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세상에 나가 오직 훌륭한 작가가 되어라’하고 이들을 내보내는 마음은 편하기는커녕 곤혹스럽고 무겁기만 하다. 예술가 또는 작가로서 나서는 것은 분명 인생의 보람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훌륭한 직업이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당장 생업이 보장되지 않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작가란 어쩌면 현실적으로 직장 없는 직업인, 사회·경제제도와는 무관한 추상적인 직업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런 탓에 공공의 사회제도 안에서 작가는 무직에 다름없는 대우를 받는다. 작가의 직함을 갖고 은행에서 금융서비스를 받거나 생업을 위한 경제적인 활동 등을 보장받는 경우는 없다. 예술과 작품은 당장 돈으로서 환치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본래 작가로서의 직업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생업으로서의 다른 직업을 먼저 찾아야 한다.

며칠 전 보도된 한국관광문화정책연구원의 ‘문화 분야 사회서비스 실태조사·제도개선 연구 용역 보고서’는 오늘날 예술가들의 참담한 경제적 현실을 보여주지만 새삼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늘 그래 왔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의하면 많은 예술인들이 저소득층(기초생활보장 대상자 또는 차상위 계층)에 해당되며, 이 가운데 생계 자활 후견 사업(도배·집수리 사업)에 참여하는 저소득 예술인도 있다고 한다. 문화예술인의 70%가 본업만으로는 월평균 100만원도 채 벌지 못하고 29%만이 정규직이며 한달에 70만~80만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자고로 예술가의 길은 늘 춥고 배가 고팠다. 빈센트 반 고흐, 이중섭, 박수근 등도 그들의 예술은 위대했지만 가난으로 살다가 갔다. 인류가 절대 가난을 벗어난 문명시대에도, 21세기 문화의 시대, 예술이 사랑받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도 예술가는 여전히 가난하다. 예술이란 사회의 소중한 산소요 맑은 공기가 아니던가. 또 예술가란 혼탁한 세상을 맑은 영혼으로 정화시키는 청소부라 하지 않았던가. 이들의 삶을 최소한 보장해 삶의 질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강도 높은 문화예술 육성정책이 절실하다. 아울러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보호 인식도 절실히 요구된다.

봄이 오는 3월의 캠퍼스에서 장래의 예술가를 꿈꾸며 입학한 새내기들을 만난 기쁨은 크지만, 막 작가의 길로 들어선 졸업생들을 생각하면 한편 마음이 가볍지만 않다. 그대들 부디 영광있으시라!

/이 종 구 중앙대 예술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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