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동경 중심지에 있는 오쿠라 호텔에 조용히 잠복(?)했었다. 필자가 출연하는 방송사의 취재 요청에 호텔 측이 거부했고 우리 일행은 쉽게 포기할 수 없어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호텔에 도착해 호텔의 마당이나 정원으로 보이는 곳은 다 찾아다녔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직원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바깥으로 나와 담배를 하나 피워 무는데 무언가 나를 당기는 기운이 있어 홀린 듯 끌려가보니…. 아! 잘 생긴 탑 2 기가 오쿠라 호텔 구석에 처박혀 있다. 순간 온몸으로 전해지는 전율과 아울러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하나는 평양의 율리사지에서 뺏어온 팔각오층탑이고, 또 하나는 경기도 이천에서 약탈해온 ‘이천향교방오층석탑’이다. 이 탑에서 ‘방’은 부근이란 뜻으로 이천 향교 근처에 있었다는 뜻이고 원래는 쌍탑이었다. 현재 양정여고에 다른 1 기가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제 모습을 잃어버린 채 남아있다.
일제는 지난 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물산공진회(박람회)의 장식품으로 옮겼다 지난 1918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약탈해가 현재 동경의 오쿠라 호텔에 서 있다.
경복궁에 있을 당시의 사진 자료 등 유출 경로가 확실한만큼 보다 상세한 경위 조사와 함께 서명운동 등으로 모든 시민들과 단체가 참여하는 환수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적 여론을 조성하고, 소송 제기 등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는 수순이 필요해 보인다.
이천향교방오층석탑은 보존 상태도 양호한 국보급의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이를 되찾기 위한 환수운동은 이천의 정체성을 찾고 문화와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의식을 성숙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일본에 있는 문화재의 경우 지난 1965년 한·일협상 때 양국은 약탈문화재 1천400여점 반환에 합의했지만 경제지원 대가로 우리 정부는 서둘러 협상을 끝내 버린 오류를 범했다. 일본의 민간인 소유 약탈문화재에 대해선 일본 정부가 기증을 권고할 수 있다는 합의 의사록만 별도로 작성한 정도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우리나라에서 민간 주도의 문화재 반환은 데라우치 문고에서 시작됐다.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지난 1910년부터 5년동안 문화재 조사사업을 실시, 문화재 1천500여점을 반출했다. 야마구치대 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이들을 찾아내고 지난 1995년 돌려받은 건 민간차원의 노력 덕분이다. 당시 야마구치 대학은 정부가 아닌 대학 차원에서 보내 주며 ‘반환’ 대신 ‘기증’이란 용어를 썼다. 최근 있었던 조선왕조실록이나 북관대첩비 등의 환수도 민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은 민간의 노력으로 시작됐지만 최초로 국가기관간에 주고받았다는 큰 의미가 있다.
이를 잘 활용해야한다. 동경대는 국가기관이며 국가기관인 서울대로 조선왕조실록을 돌려준 건 일본 스스로가 65년 한·일협상을 파기한 것으로 간주해 우리는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 반환을 강력하게 촉구해야 한다.
혹자는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무슨 문화고 역사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 때 일수록 주변을 돌아보며 차분한 정리와 새로운 충전이 필요할 것이다. 경기 도민들과 특히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고 잘 전승하고 있는 이천 시민들의 결단을 기대한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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