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녹색화’가 절실하다

이 인 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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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에 잘 아는 분이 있다. 그 분은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후 공연예술 분야 사업을 추진하면서 미국, 일본, 유럽, 동남아 등 세계 각지를 수시로 넘나드는 글로벌 예술 비즈니스맨이다. 최근 그 분은 갈수록 확장되는 중국시장을 내다보고 그곳에 대한 공연예술분야 교두보 확보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예술계에서 중국시장은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무한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아티스트들은 중국 내에서 숙식만 제공해도 너도나도 공연을 펼치려고 경쟁을 벌였다. 13억 중국시장에 예술의 ‘맛’을 알게 하면 미래의 황금 알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란 사업개척의 혜안 때문이었다. 그것이 오래 지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이젠 수익이 창출되는 중국대륙을 찾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발 빠르게 경제의 논리가 통하는 세계의 예술시장에서도 주역이 돼 가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중국을 무서워해야 하는 이유는 중국의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용틀임의 잠재력이다. 그들은 느리면서도 빠른, 마치 ‘거북이 같은 토끼’의 양면성의 저력을 보여주는 문화의 큰 힘을 갖고 있다. 내년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펼쳐지는 그들의 변혁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누가 이런 중국인들을 ‘느림의 미학’으로 수사(修辭)를 하려고 했던가?

그 힘의 원천에는 우리가 갖고 있지 않는, 그럼에도 모두가 간과하는 대국다운 국민성이 있다. 사회적 대의를 수용하면서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가치관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갈등구조가 첨예하지 않으면서 계층·세대간 신뢰도 간극이 극명하지 않다. 어찌 보면 56개 소수민족들로 구성된 13억 인구의 통합된 다양성이 사회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끼 천원 식사를 하는 기층민이나 100만원짜리 호사스런 만찬을 즐기는 부유층이나 그 나름대로의 당위성을 인정받으며 양극화의 반감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어떤가. 근래에 들어 이른바 민주화, 자유화의 물결 아래 언로가 완전 개방된데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문화는 사회 모든 부문에서 분열과 갈등 등을 만연시켰다. 모든 사안에 대해 사회적 통합과 화합이 어려운 풍조가 된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절대 필요한 정의와 수용의 가치가 사라지고 다수이든, 소수이든 집단주의가 횡행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돼 버렸다. 그러다보니 온 사회가 개인·계층·지역간 물고 물어뜯는 난장판이 돼 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국가가 내 놓는 하나의 정책은 또 하나의 갈등을 낳고, 하나의 제도는 또 하나의 분열을 촉발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최근들어 폭발하는 다양한 사회적 함성은 우리 사회가 편안하고 살기 좋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기보다 각박하고 인정이 메마른 이전투구장의 국가로 가는 길목에 접어든 게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가 꼭 정치와 경제만은 아닐진대, 물질만능가치에 빠져 ‘마음이 가난한 부자국민’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것이다.

문명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결국 인간은 본래의 감성을 찾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조만간 물질이 넉넉하지만 과거의 인간성과 인정이 넘치는 우리 민족 고유의 미덕이 간절해질지 모른다. 이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정치나 경제의 발전보다도 여유와 부드러움과 평화스러움 등이 회복되는 ‘사회의 녹색화(Greening)’라고 할 수 있다.

/이 인 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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