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를 잘못 꿰면 나머지 일들이 고약하게 되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지난해부터 준비되지 않은 국립공원 입장료 일방적 폐지가 불러일으킬 혼란에 대해 수차례 경고와 보완을 요구했지만 선거를 겨냥한 정치권과 환경부는 동반되는 문제인 문화재관람료에 대해 “우리가 알바 아니다”란 입장을 밝혔다.
문화재청 역시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문화재 소유자는 공개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문화재를 공개할 수 있으며 관람료를 받을 수 있다”는 규정에 의해 얼마든지 사찰 입구에서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게 행정지도가 가능하지만 “나는 모르겠다”라는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다.
불교계 역시 설악산 백담사, 지리산 연곡사, 내장산 내장사, 덕유산 백련사 등 사찰 9곳의 소유지가 아닌 곳에 위치한 매표소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면서 등산객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으며, 오히려 국립공원 내 사찰에 대해 해지를 해줄 것과 부지 사용료를 강요하고 있다.
시민들의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급기야 지난 17일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이치범 환경부장관, 유홍준 문화재청장, 박화강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등이 모여 대책을 협의했다고 한다.
필자는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가닥 희망을 갖고 결과를 지켜봤다. 결국 나온 얘기라고는 4개 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정부의 대표 격으로 참가했던 환경부장관과 문화재청장 등은 미숙하게 대응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고 하며 최근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사찰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매표소의 장소 이전문제에 대해선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정치·종교 권력 앞에 시민들의 권리는 또 다시 농락당하고 만 것이다. 이는 또한 시민들의 혈세를 정치권이나 불교계가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선거 때마다 특정 종교단체 표를 의식한 선심성 정략이 오늘의 사태를 맞이했으며 종교단체는 이를 이용해 시민들의 혈세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만약 정치권이나 종교단체가 이처럼 말로 할 수 없는 억지 주장과 직무 유기를 보인다면 시민들도 이런 주장이 가능할 것이다.
설악산 신흥사는 관람료 수입의 상당량을 울산시에 돌려줘야 한다. 설악산의 울산바위는 울산에 있다가 설악산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며, 불국사는 지난 70년대 국민들의 세금으로 복원됐다. 즉 불국사 건물의 주인은 국민들이다. 따라서 불국사와 석굴암, 기타 60년대 이후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수 및 복원된 불교문화재들은 모두 소유가 국민들과 정부에게 있다.
필자도 글을 쓰다 보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며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불교계는 유치하다 못해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정부 조직 방만함과 관련,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란 구조 조정 필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한다. 정부 및 산하기관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적과 명승, 천연기념물, 불교문화재 등의 관리권이 문화재청, 산림청,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집중해야할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나 우리나라의 문화헌장은 자연유산을 문화의 범주로 포함하고 있다. 현 국립공원관리공단을 환경부에서 문화재청으로 귀속시키면 입장료 수입·지출의 투명화, 국립공원과 문화재 관리의 일원화 등의 이중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정치·종교 권력 앞에 농락당하는 시민들의 권리를 더 이상 간과하지 말고 불교계와 정치권의 결자해지의 자세를 촉구한다.
/황 평 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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